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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스타 CEO ⑦ 김종모 공주한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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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한일고 김종모 교장은 이상적인 인재 교육 방법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을 구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전영기 기자 ykooo@joongang.co.kr >


“무(無)를 활용해 유(有)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주 한일고(학교법인 한일학원) 김종모(57) 교장은 인재교육에 대해 “학생들이 백지상태에서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입시에 치우쳐 ‘주물 틀로 찍어 만드는’ 교육으로 흐르는 경향을 경계했다. 한일고에서 교사·교감을 거쳐 교장에 오르면서 개교 이후 오늘까지 학교를 발전시켜 온 그를 지난달 30일, 한일고에서 만났다.

<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

창의력 억누르는 환경요소 없애기부터
김교장은 한일고가 창의적 인재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무(無)’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꺼냈다. “특목고로 불리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우리학교(한일고는 농촌자율학교다)에 없는 게 바로 3무, 교문·교복·공해죠. 우린 이를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는 위해요소로 봤습니다. 생각이 환경에 무의식적으로 지배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예요.”

그는 3무의 효과를 이렇게 묘사했다. “교문이 없어 학생들의 시선이 지평선까지 트이고, 자율 복장이어서 활동과 생각이 자유분방하죠. 시골이라 공해도 없어요. 졸업생들이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어요. 개교 때부터 이런 효과를 고려해 교육과정을 짰죠. 건물의 배치·간격도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한 거예요.”3무는 학교생활에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멀티미디어 교육을 명목삼아 학교마다 앞다퉈 도입하는 인터넷·컴퓨터·TV·휴대전화도 여기선 공해일 뿐이다.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사교육 껍질 벗고 홀로서기 능력 키워
이 같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목적에 대해 김교장은 “학생들의 야생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밀림에서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하기 위해서란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공부법부터 진로에 대한 의사결정까지 모든 걸 학원과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습성이 커요. 학습 계획은 물론 심지어 창의력조차 주입식으로 길러진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일고에 오면 그렇게 길들여진 묵은 때를 벗기는 일부터 하죠. 부족한 시설과 결핍된 환경에 인위적으로 노출시켜 필요한 것을 자기 스스로 찾게끔 유도하는 거예요.그 과정에서 친구나 선·후배들과 협력하는 법도 함께 배우게 되는 거죠.”

그는 이 같은 교육방식이 학생들의 지적·신체적 단련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 보딩스쿨(명문 기숙학교)의 조사결과를 언급했다. 이어 학생들이 입학한 뒤 점차 자율능력을 갖춰나가는 변화과정을 얘기했다. 스스로 계획을 짜고, 시간을 조절하는 등 자기관리법을 배운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교육 의존증을 빼면서 새학기를 보낸 신입생들에게 100일 잔치를 열어줘요. 통과의례죠. 발표회도 열고, 학부모가 1일 교사로도 나섭니다. ‘홀로서기’와 ‘더불어 살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거죠.”

자주협력학습으로 자율능력을 기르다
학생들이 이처럼 스스로 하는 공부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는 배경에는 ‘자주협력학습’이 있다. 학생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한일고의 교육방식 중 하나다.

‘DT(Debate Tutoring)’로 불리는 이 수업은 기숙사 한 방 동료 8명이 한 조가 돼 수업을 준비하고 서로 가르치는 형식이다. 필요한 기자재 준비와 부족 부분에 대한 지도는 학교와 석·박사급 교사들의 몫이다. “학생들이 과목별로 자신의 장점을 부족한 친구나 후배들과 나누는 겁니다. 여기선 일상화돼 있어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토론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죠. 함께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경쟁하는 다른 학교와는 다른 광경이죠.이를 통해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참여를 북돋기 위해 수업 대부분은 토론 위주로 진행된다. 그 여파로 학생들의 학습동아리 수가 60여개에 이를 정도다. 주말에도 삼삼오오 모여 과제 해결에 골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화랑교육 통해 글로컬 정신 인성교육
“인재로 성장하려면 공동체의식을 갖고 내 고장과 세계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김교장은 한일고가 추구하는 인재상을 설명하며, 입시교육에 쫓겨 인성교육이 내몰리는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일고는 ‘화랑교육’을 인성교육 브랜드로 내세운다. 문무를 갖춘 글로컬(Global+local)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학생들은 고교3년동안 충무공 전적지 횡단순례·한중일 해외문화교류·백제문화탐사·역사인물탐구·공연관람·스포츠 교육·3품(태권도·기타·단소) 의무학습·봉사활동·명사특강·진로여행(관련분야 현장방문)·외국어 교육·정보기술자격증 취득 등을 체험한다.

“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세계적 안목을 갖추는 것이 목표에요. 공부시간보다 체험인 성교육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학생들의 감성과 호연지기를 깨우는데 주력합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공부의 활력이 될 학습동기를 찾게 되구요.” 그는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지능지수가 낮아 공부를 못한다는 소극적 사고를 버리게끔 가르친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각 체험학습이 끝날 때마다 ‘화랑바라기’를 채워나갑니다. 과제를 해결하며 체험후기를 적는 문집인데, 3년 동안 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죠. 20년 뒤 인생 설계도 담겨 있어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서 실천해야 할 신념과 목표를 일깨워주는 나침반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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