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여성국극 '진진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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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여느 대학로 관객들에게 요즘 학전블루 소극장을 찾는 일은 퍽 색다른 체험이다. 여성국극 '진진의 사랑' 이 공연중인 이 극장의 객석 평균연령은 다른 소극장보다 20년은 윗길일 터. 그런 관객 속에서 터져나오는 '얼쑤' '잘한다' 등의 추임새와 '오빠' 하는 때아닌 비명을 함께 듣고 있노라면, 객석을 3분의1쯤 차지한 젊은 관객들로서는 무대와 객석이 동시에 구경거리다.

나이 갖고 따지자면 정말 화제가 되는 것은 역시 무대쪽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40대 이상의 중장년 배우, 그것도 여배우를 만나기란 여간 드문 일이 아니다.

30전후의 배우들이 사투리 억양과 구부정한 몸짓에 기대 노년 배역을 연기하는 일반적인 사정과 정반대로, 이 국극 무대는 환갑전후의 배우들이 나이를 거슬러 한껏 고운 자태와 맑은 목청을 과시하려한다.

왕년의 국극스타였던 김진진 자신으로 등장하는 김진진의 연기는 정교한 맛보다는 오랜 무대인생에서 나오는 저간의 힘을 보여준다.

당시 남장배역단골로 인기를 모았던 임춘앵을 연기하는 이옥천. 화려한 분장과 의상 뒤에 나이를 감춘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전성기의 여성국극이 그나름의 '오빠부대' 를 몰고다녔던 비결을 젊은 세대 관객들이 짐작할 실마리가 된다.

'왕년의 국극팬' 아닌 요즘 관객에게 '진진의 사랑' 은 분명 색다른 관극체험임에 틀림없지만, '새로운 국극의 시작' 이라거나 '국극의 세대교체' 라는 수식은 이 무대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삽입된 왕년의 국극무대 장면과 에피소드가 주는 재미에 비해, 국극의 몰락 과정에 대한 후반부의 서사는 별다른 극적 긴장을 주지못하는 것도 약점 중의 하나다.

국극매니아인 연출자 이정섭의 공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 무대의 의미는 차라리 국극 자체보다는 대학로쪽에서 찾는 편이 낫다.

오랜 국극 배우 다섯 사람의 다소 양식적인 대사발성법은, 관객이 뒷덜미가 뻣뻣해지지 않고는 감당하기 힘든 방식으로 쏟아내는 현대극의 대사와 다른 편안한 맛을 준다.

전체 얼개의 꽉 짜여진 맛이나 고도의 기교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지 몰라도, 몸에 배인 창 (唱) 과 대사를 어우러내는 무대의 적당히 삭은 젓갈같은 맛은 수입뮤지컬의 날재료들을 어떻게 소화할 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발상전환에 한 참조가 될 법하다.

9월13일까지. 02 - 763 - 8233.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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