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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년 스포츠 10대뉴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대한민국 건국 반세기 동안 한국 스포츠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는가 하면 지난 네차례 올림픽에서 연속 10위권에 들어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또 탁구.축구 남북한 단일팀 구성으로 남북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특히 최근 들어 박세리.박찬호.선동열.이종범.조성민 등이 국제무대에서 맹활약, IMF로 찌든 국민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다.

건국 50주년 10대 스포츠 뉴스를 연표와 함께 알아본다.

◇88 서울올림픽 개최

81년 9월 30일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렸던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에서 서울은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제24회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서울올림픽은 전세계 1백60개국에서 1만3천6백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져 10년이 지난 지금도 IOC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올림픽' 으로 평가받고 있다.

◇ 월드컵 유치 및 4연속 본선

88서울올림픽에 이어 96년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 일본과 공동주최국으로 결정됐다.

86년 멕시코월드컵 진출권을 따낸 한국 축구는 90년 이탈리아, 94년 미국,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잇따라 따내 아시아 축구의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한국은 본선에서 16강 진출은커녕 1승도 올리지 못해 국민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 황영조 바르셀로나 월계관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은 프로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올림픽의 실험무대였다.

황영조는 손기정옹의 마라톤 우승 이후 56년만에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몬주익경기장에 골인, 일제치하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줬다.

특히 올림픽 마라톤사에서 아시아권 선수로서는 손기정과 황영조 둘만이 우승을 차지해 그 가치가 더했다.

◇ 양정모 올림픽서 첫 금메달 쾌거

광복 이후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수차례 참가했던 한국 스포츠 스타들은 번번이 세계무대 장벽에 막혀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온 국민의 염원이 몬트리올올림픽에 쏠렸던 76년 7월 31일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 출전한 양정모가 마침내 금빛 소식을 조국에 전했다.

한국스포츠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선지 28년, 손기정선수의 금메달 이후 40년만의 쾌거였다.

◇ 박찬호 미 메이저리그 입성

94년 1월 당시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박찬호가 다저스로부터 1백20만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었다.

박찬호는 2년여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다저스의 간판투수로 성장, 최고구속 1백60㎞에 근접하는 강속구로 지난해 14승을 기록한 뒤 올해에도 이미 10승 고지에 올라 '코리안특급' 으로서 명성을 쌓고 있다.

◇ 박세리 세계그린여왕 등극

'한국의 최고 수출품' . 미국 언론은 98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에서 이미 4승을 올리고 있는 프로골퍼 박세리를 이렇게 평했다.

지난 96년 한국 프로무대에 뛰어들자마자 4개 대회를 석권하며 무서운 아이로 주목을 받았던 박세리는 98년 LPGA 프로테스트를 1위로 통과한 뒤 올시즌 LPGA 챔피언십과 US오픈 등 메이저대회를 연속 제패하는 쾌거를 이뤘다.

◇ KBO 발족…프로시대 개막

81년 12월 11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 (KBO)가 발족하며 한국스포츠는 본격적인 프로시대를 맞이했다.

비록 군사정권 주도로 프로화가 추진돼 '우민화의 산물' 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경제발전으로 국민의 여가시간이 많아진 뒤 볼거리가 없었던 국민은 스포츠 관전으로 건전한 여가선용을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야구.농구.축구 등은 프로화의 영향으로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 탁구·축구 남북단일팀 구성

한국과 북한은 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렸던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함으로써 이산가족들에게는 통일의 꿈을 안겼다.

또 90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남북통일 축구대회를 치렀던 축구도 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포르투갈)에서 단일팀을 이뤘다.

◇ 레슬링 세계선수권 첫 재패

64년 도쿄올림픽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장창선이 6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 제패였고 이후 한국 레슬링은 세계정상으로 발돋움했다.

73년 4월 유고 사라예보에서 벌어졌던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이에리사.정현숙 등이 주축을 이룬 한국이 중국을 꺾고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탁구강국의 길을 열었다.

◇ 프로복싱 김기수 세계챔프

아마추어 스포츠와 더불어 60년대에는 프로복싱과 프로레슬링이 국민의 볼거리였다.

특히 66년 6월 김기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꺾고 프로복싱 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에 올라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어 복싱은 '4전5기' 의 홍수환.장정구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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