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3개 연쇄 범람, 100여 명 한때 고지대 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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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2일 오전 7시30분쯤 수원시 권선구 평동. 새벽부터 내린 장대비로 하천이 범람할 수 있다는 마을 방송이 울려 퍼졌다. 평동은 수원에서 화성으로 흘러가는 황구지천과 서호천·매산천 등 3개 하천이 합류되는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32가구 100여 명이 산다.

서울·경기·충청 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12일 팔당댐 수문 10개가 모두 열렸다. 한강홍수통제소 관계자는 “팔당댐의 방류량은 한강 수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저지대 주민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안성식 기자]


긴급 안내 방송이 계속되자 주민들은 귀중품과 필요한 옷가지만 챙겨 대피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모든 주민이 지대가 높은 쪽에 있는 주민자치센터와 고색초등학교 등 두 곳에 모였다. 몸만 빠져나온 주민도 많았다.

잠시 후 서호천을 시작으로 매산천·황구지천이 잇따라 범람했다. 이후 오전 11시까지 1시간30여 분 동안 하천이 범람하면서 마을 일부 지역이 발목에서 무릎 높이까지 침수됐다. 다행히 제방이 무너지거나 유실되지는 않았다. 황구지천 제방 높이는 5m며 서호천과 매산천 제방은 2∼3m다. 마을 주민 서윤호(55)씨는 “이렇게 많은 비가 내려 3개 하천이 동시에 범람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낮 12시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하천 수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후 2시쯤 물이 거의 빠지자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를 청소하며 집안 정리에 들어갔다. 정화조가 넘쳐 집집마다 역겨운 냄새가 났다. 주민들은 “앞으로 일주일은 치워야 집에 들어갈 수 있겠다”며 “오늘 밤은 꼼짝없이 주민자치센터에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주민 이영철(42)씨는 “마을에 비가 조금만 내려도 침수 지역이 생기곤 한다”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3대째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태수(54)씨는 “7~8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기는데도 시에서는 펌프카 두 대만 갖다 놓은 채 손을 놓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봉사활동을 나온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수원지구 협의회 회원 한경희(40·여)씨는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아침부터 나와 있었다”며 “주민들에게 담요와 생필품 등 구호물품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황구지천과 붙어 있는 화성시 황계동에서도 주민들이 대피했다. 이곳에는 주민 200가구 400여 명이 거주한다. 대피 방송을 들은 주민들은 인근 고지대에 있는 친구 또는 친척 집으로 잠시 대피했다가 하천 수위가 내려가자 집으로 돌아갔다. 침수 피해를 본 한 가구 가족 5명은 마을회관에 남아 있다.

황계동을 담당하는 화산동 주민센터는 “주민들이 방송을 듣고 처음엔 당황했으나 하천 범람이 일어나지 않자 안정을 찾았다”고 전했다.

수원·화성=정영진·김진경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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