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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운무 낀 산자락 사이로 추억의 ‘우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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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 오전 8시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남춘천 나들목 앞은 형형색색의 운동복에 우비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울~춘천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하는 춘천 전국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굵은 빗줄기가 내렸지만 4500명의 신청자 중 3500여 명이 현장에 나왔다.

12일 오전 춘천마라톤대회 5㎞ 코스에 참가한 엄마 김윤희씨(참가 번호 763번)와 딸 송인양이 우산을 받쳐 들고 반환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최승식 기자]

참가자 이수배(47)씨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한 번밖에 없는 경험이어서 마산에서 올라왔다”며 “비가 와 운무가 낀 산자락을 보며 달리는 ‘우중주(雨中走)’여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경록(39·공무원)씨와 함께 생애 첫 5㎞ 달리기에 나서는 이동훈(9)군은 “아빠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출발선에서 가족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참가자들의 모습을 담으며 “아빠 힘내세요”를 외쳤다.

출발 시간이 되자 빗줄기는 더 거세졌지만 ‘질주 본능’을 막지는 못했다. 오전 7시에 출발한 55㎞ 울트라 코스 참가자 300여 명의 뒤를 이어 9시 풀코스 참가자 500명이 뛰어나갔다. 출발을 알리는 폭죽과 함께 “파이팅” 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10분 간격으로 하프와 10㎞, 5㎞ 코스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달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어깨에 풍선을 매달고 달리기도 하고, 머리에 우비를 터번처럼 두르고 빗길을 뛰기도 했다.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부부도 눈에 띄었다.

출발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광판터널이 나타났다. 마른 터널 안엔 비에 젖은 운동화 모양이 새겨지고 수십 명의 발걸음 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려 퍼졌다. 터널에서 벗어나자 쭉 뻗은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녹음이 우거진 숲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평소 도로를 달릴 때 반대편 차량의 소음 등으로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달려나갈 때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운동복에 사각거리는 우비 소리와 찰박거리는 운동화 소리도 경쾌했다. 발산대교 아래 홍천강에선 물안개가, 먼 산자락에선 산안개가 피어 올랐다. 발산대교를 지나던 홍기각(51·회사원)씨의 입과 몸에서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홍씨는 “대교 위를 달리니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라며 “기록이 나빠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생애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무사히 완주를 마쳤다. 결승점에 들어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강북마라톤회 이경오(52) 코치는 “산속을 달리는 것처럼 상쾌했다”며 “평생 자동차로 달리면서 ‘내가 저길 뛰었다’고 생각하면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하프코스를 완주한 왕재설(55·춘천시 후평동)씨는 “산을 끼고 있는 도로를 달리니 산속을 뛰는 느낌이었다”며 “비가 오지만 중간에 터널이 비를 막아주기도 하고 땡볕에서 달리는 것보다 기록이 더 잘 나왔다”며 웃었다. 한편 이날 대회에는 예상 밖의 많은 인원이 참가해 고속도로변에 차가 정차되는 등의 한때 혼잡을 빚었다.  

김경진·이정봉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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