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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지역 어린이들 '수난'…구호품도 어른용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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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흙탕물에 젖어버린 교과서, 계속된 감기.배앓이, 부모와 생이별…. 유례없는 서울.경기.충청지역 수해로 어린이들도 힘들게 여름을 나고 있다.

불결한 환경에 노출돼 감기에 걸리거나 배앓이를 하는 것은 물론 수인성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구호품이 어른 위주여서 분유 등 먹을거리는 물론 기저귀나 속옷 등 입을 것도 변변치 않다.

또 교과서나 학용품이 모두 젖거나 유실됐고 복구작업으로 일손이 바쁜 부모와 생이별하는 아픔도 겪고 있다.

◇떠내려간 교과서.침수된 학교 = 개학을 10여일 앞두고 어린이들은 교과서와 학용품, 그리고 방학내내 했던 숙제들이 못쓰게 돼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정희경 (鄭姬京.13.동두천초등6) 양은 "교과서가 다 젖거나 쓸려내려가 어떻게 개학을 맞이할 지 모르겠다" 고 울상을 지었다.

동두천 보산초등교 이기범 (李起範.51.서울도봉구쌍문동) 교사도 "학교 침수로 어린이들이 교실 개인사물함에 넣어둔 크레파스나 탬버린 등 학용품이 못쓰게 됐다" 고 한숨지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31개교가 학교 건물이 침수됐고 교과서를 유실한 학생들도 3만2천여명에 달한다.

◇질병 = 어린이들이 침수사고 후 주변환경 악화로 인해 감기나 배앓이.피부병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의정부보건소 유혜경 (劉惠慶.45.여) 간호사는 "침수된 집이나 수용시설에 있는 어린이들 가운데 무료진료소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 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윤도경 (尹度景.32) 전문의는 "어린이들이 그동안 깨끗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면역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며 "각종 수인성 질병, 특히 국내에서 아직까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A형 간염에 감염될 경우 큰 문제" 라고 말했다.

◇구호품 부족 = 최근 민간단체에서 동두천초등교 이재민에게 보내온 구호 의류품 세 상자중 어린이용은 전무했다.

파주시조리면 봉일천중에 있는 서승원 (28.여) 씨는 "돌을 갓 지난 딸아이에게 먹일 분유나 기저귀가 없어 친척들이 보내준 것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곧 바닥날 것" 이라고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옷가지나 먹을 것 등 구호품은 어른용이어서 어린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특히 갓난아이의 경우 구호품이 거의 없다.

◇생이별 = 침수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친척집 등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함께 지내기 불결한 환경인데다 복구작업으로 인해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살.다섯살 두아들을 친척집에 보낸 오현석 (吳賢石.31.의정부시가릉3동) 씨는 "누군가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어 안심이 되면서도 연락할 때마다 보고싶다고 우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고 말했다.

백성호.서익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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