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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특기 소총수인 강 병장 ‘나는야 바다의 사나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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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경석 정장(상사·오른쪽 상단)이 육군 경비정 ‘충장1호’ 뱃머리에서 병사들에게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는 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1일 저녁 전남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 앞바다. 굵은 빗발 속에 자그마한 배 한 척이 떠 있다. 육군 경비정 ‘충장1호’다. 오경석(39) 정장(상사)이 “전투 배치” 명령을 내리자 다섯 명의 병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강병현(24) 병장은 K-6 중기관총 앞에서, 임길평(20) 이병은 갑판 위에서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이들의 복장은 여느 해군과 달리, 육군의 얼룩무늬 전투복이다. 이들의 소속은 육군 제31보병사단. 하지만 근무지는 ‘바다 위’다. 오 상사는 “해안을 경계하는 임무의 연속선상에서 경비정을 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1사단은 충장1호 외에 여러 척의 경비정을 운용하고 있지만 보안사항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육군 경비정의 주요 임무는 연안 지역에서 수중 침투하는 잠수정이나 적을 색출하고 격멸하는 것이다. 전남 앞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에 주둔하는 부대에 병력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임무도 맡는다. 이와 함께 밀입국 선박 감시와 해상 구난 임무 등도 수행한다. 오 상사는 “평소 읍내리 영내 부대에서 대기하다 명령이 떨어지면 5분 이내에 충장1호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5분 대기조로 근무하는 만큼 이들은 24시간 내내 전투복 차림으로 생활한다. 실제 경계나 매복 임무를 나가는 것은 주 1~2회가량. 전남 해안 일대를 후방이라고 얕잡아 봐서는 곤란하다. 해안 소초와 육군 경비정의 일과는 휴전선 최전방 GOP와 닮은꼴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탄과 수류탄,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경계를 서는 밤의 풍경이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낮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는 것이다.

육군 경비정은 연안과 인근 섬을 항해하는 만큼 덩치는 작은 편이다. 해군의 가장 작은 함정인 고속정이 150t인 데 비해 충장1호는 30t급이다. 다만 충장1호의 시속은 35노트(약 65㎞)로 기동성이 뛰어나다. 정장을 포함해 6명이 한 팀을 이루며 선두와 선미에 K-6 중기관총이 장착돼 있어 유사시 해전도 불사한다.

충장1호와 인연을 맺은 병사들은 주특기가 제각각이다. 소총수 주특기인 강 병장은 “기대했던 것과는 색다른 군 경험을 하고 있다”며 “공간이 좁고 이동 속도가 빠른 경비정에서 근무하는 만큼 군기는 세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한 임 이병은 항만운용 주특기를 받았다. 선배로부터 입대 전에 ‘해군처럼 근무하는 육군’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1990년 보병 부사관으로 입대한 오 상사는 수송관으로 근무하다 바다에 매력을 느껴 99년 주특기를 항만운용으로 바꿨다. 이후 충장1호와 한몸처럼 지내온 그는 “서해 연안의 물길을 꿰뚫고 있어 육지보다 바다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제31사단 정훈장교인 문제석 소령은 “방호 책임지역인 광주·전남지역은 크고 작은 섬이 2000여 개이고 해안선 길이도 휴전선의 아홉 배가 넘는 2200㎞에 이른다”며 “원활한 해양경계 작전을 위해 경비정은 필수 장비”라고 말했다. 해안에서 레이더나 열추적장비(TOD)로 추적하던 의심 표적이 섬 뒤로 숨을 경우엔 감시 모니터에서 사라진다. 이때 먼 바다는 해양경찰 소속 배가 출동하지만 3해리(약 5.5㎞) 이내의 가까운 바다는 육군 경비정이 출동하게 된다.

문 소령은 98년 12월 전남 여수시 임포지역으로 침투하다 육군 초병에게 발각돼 격침당한 북한 반잠수정 사건을 실전 사례로 들었다. 당시 해군·해경과 공조 속에 이뤄진 작전에서 육군 경비정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얘기다. 2005년에는 중국에서 밀입국하던 목선을 적발하기도 했다. 문 소령은 “지리적으로는 최후방이지만 이곳 안보 상황은 최전방과 다를 것이 없다”며 “언제든 여수 반잠수정 격침 사건을 재현할 수 있다는 다짐에서 ‘어게인 98’을 부대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신안=이상재 기자 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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