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김진경 '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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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 숲길을 걸었다. 간벌을 위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여기저기

흙이 무너진 곳 새로이 흐르는 작은 개울

물 간혹 베어진 통나무를 만나곤 한다.

숲 깊이 들어가노라면 어느새 나무들의

향기에 싸이고 이 향기는 어디로부터 오

는 것일까. 다시 베어진 통나무 더미를 만

나 숨이 멎듯 발걸음을 멈춘다. 진한 향

기는 베어진 나무의 생채기에서 퍼져 숲

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의 상처에서도 저렇게 향기가 피어

날 수 있을까?

- 김진경 '숲'

살아가는 동안 인간에 대한 환멸을 적지 않게 만났다.

예부터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오지만 그 영장류 (靈長類) 라는 것이 결코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 앞에서 떳떳하지 않다.

매우 든든한 시인 김진경 (金津徑.45) 은 그런 사실을 두고 나무의 상처에서 배어나는 향기를 진솔하게 불러일으킨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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