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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기업들 임원보험 가입 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손보업계에 '임원배상보험' 특수 (特需)가 일고 있다. 임원배상보험이란 임원의 경영실패로 재산피해를 본 주주 등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 회사가 물어줘야 하는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상품. 그동안 주주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영진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주주들이 이긴 경우가 전무해 판매도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제일은행 소액주주 승소를 계기로 기업.금융기관의 가입 문의가 손보사에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화재 최승형 (崔承衡) 팀장은 "지난 한주 동안 가입 제안서를 보내온 기업이 평상시보다 5~6배 이상 많은 80여개사에 달했다" 며 업계 전체로 따지면 3백~4백여사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배상보험에 가입한 기업도 보상한도를 더 늘리겠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소송 통한 경영진 견제 시작됐다 = 투신사들은 신탁재산 보호 차원에서 소액주주 대표소송을 적극 제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표소송이 가능한 최저 보유지분 한도는 현재 0.01%인데, 투신사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는 50여개 기업이 부실해질 경우 가차없이 소송하겠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정책위원회측은 한술 더 떠 1주만 가지고도 부실경영을 제소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영 잘못하면 재산 다 날린다 = 지난 6월말 현재 임원배상보험 가입건수는 총 64건. 연간 보험료로 따지면 1백20억원 규모라고 손보업계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가입범위나 보상한도를 따져보면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업과 상대가 안된다.

미국의 경우 상장사의 95%가 임원배상보험에 가입해 있으며, 체이스맨해튼은행 가입 보험의 보상한도는 10억달러 (약 1조3천억원)에 달한다.

반면 국내 기업의 평균 보상한도는 10억~15억원,가장 많은 기업이 2백억원이다. (대한재보험 관계자) 문제는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피해액이 보상한도를 넘어서면 경영자 개인 돈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

자칫 잘못하면 가진 재산뿐 아니라 앞으로 벌 돈까지 몽땅 털어 배상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부작용은 없나 = 허둥지둥 손보사를 찾고 있는 경영진도 할말이 많다.

사욕을 채우겠다는 의도로 임원이 회사 경영을 그르쳤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만 소송이 남발될 경우 기업가마저 '복지부동' 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소액주주들이 이 제도를 이용, 이권을 챙기려는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영자의 악의나 고의성 여부에 따라 배상책임 한도를 명확히 정해 사업상 내린 판단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국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소액주주 권리가 강도 높게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세력을 얻고 있다.

결국 이 와중에서 손보사들만 짭짤한 재미를 보게 될 전망이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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