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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동맹’ 시대 움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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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치구조적으로, 가령 특정 정책목표나 정치 상황에서 연대 공조를 하기로 한다든가 하면 그런 틀 위에서 총리고 장관이고 하는 건 좋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곤 “그런 거 없이 그냥 한두 사람 빼가는 식으로 한다는 건 선진당으로선 별로 유쾌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선진당에선 “원칙론적 얘기”(총재실 관계자)라고 설명했다. 박선영 대변인은 “그간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의도에선 미묘한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총재의 발언이 과거와 유사하더라도 무게감이 공조 쪽에 실린 게 아니냐는 관측 때문이다. 양당의 앞 글자를 따 ‘한·자 동맹’이 움트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실제 요즘 한나라당과 선진당은 우호적인 분위기다. 한나라당이 단독 소집한 이번 국회에 선진당이 적극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게 지난달 말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양당이 비정규직법 합의안을 만들었다. 세종시특별법안에 대한 공감대도 마련했다. 민주당이 반대 중인 미디어법안 처리를 두고도 비슷한 기류다.

여권에선 이와 관련,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만큼 여권이 ‘단독’이란 굴레를 쓰지 않기 위해선 선진당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욱이 충청권의 민심 이반도 심각한 상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충청권 시·도 지부에선 매일 운다”고 표현했다. 선진당으로서도 과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계가 개각을 계기로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치적 능력과 지역안배가 총리 선택에 있어 중요한 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총리 컨셉트 중엔 돌파형뿐만 아니라 지역화합형과 보수대연합형도 있다”고 전했다. 충청 출신인 이원종 전 충북지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 후보군으로 오르내리는 이유다. 한발 더 나아가 선진당 심대평 대표의 이름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에도 심 대표를 총리감으로 고심했었다. 선진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연대와 공조의 기본 틀이 갖춰져야 사람을 보낼 수 있다”(류근찬 원내대표)는 입장이다. 그래서 여권이 다시 심 대표 카드를 꺼내든다는 건 선진당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여권 인사는 “이 대통령이 심 대표로 확정한다면 이후 선진당과 이런저런 논의거리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양당의 관계가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수준까지 갈 것 같진 않다. 어렵다곤 하나 한나라당은 지지도 1위 정당이다. 선진당은 아직 대전·충남에서의 영향력만 견고한 상태다. 서로 절실했던 DJP와 다르다. 계파와 지역 갈등으로 복잡한 한나라당의 내부 사정도 변수다. 정치권에선 양당이 공조한다면 정책, 특히 개헌을 고리로 한 정책 공조 성격을 띨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과 이 총재의 개헌 주장을 그 근거로 본다.  

고정애·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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