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세리 캐디 제프 케이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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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로 골퍼와 캐디의 관계는 흔히 '바늘과 실' 로 비유된다.

박세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거인 제프 케이블 (44) 이 바로 그런 관계다.

올들어 박세리가 맹활약을 펼치면서 그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뒤모리에 클래식 2라운드가 끝난 지난 1일 (한국시간)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

- 박세리의 인기가 치솟으며 함께 유명인사가 됐는데.

"나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제는 이곳 지역 TV방송국 토크쇼에 초청받아 출연했다. "

- 언제부터 박의 캐디를 맡았나.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처음 캐디를 맡았다.

박의 풀타임 캐디가 된 것은 올 2월 LA여자오픈부터다. "

- 캐디라면 프로에 버금가는 실력파 골퍼 아닌가.

"믿어지지 않겠지만 골프를 치지 않는다.

아마 캐디들의 골프대회를 연다면 꼴찌일 것이다. "

- 전혀 쳐본 적이 없나.

"10대 때 핸디캡 12였다. "

- 캐디라는 직업이 좋은 점이 있다면.

"세계 각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 정상급 프로골퍼들의 경기를 가까이 지켜보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

- 그렇다면 캐디의 단점은 무엇인가.

"골퍼와 캐디 사이에는 엄연한 '주종관계' 가 성립된다.

성격이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골퍼는 캐디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줄 때가 있다.

이런 장면이 TV를 통해 드러날 때 가장 괴롭다. "

- 박은 어떤가.

"박은 매우 좋은 '주인' 이다.

원래 신경질적인 성격이 아닌데다 워낙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골퍼여서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 "

- 박의 캐디를 맡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난 5월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였다.

우승을 앞두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그린으로 걸어가던 그 순간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 당시 박세리와 무슨 대화를 나눴나.

"박은 내게 우승을 확신하며 '이제 US여자오픈 예선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고 말했다.

그녀의 여유를 엿볼 수 있었다. "

- 또 다른 좋은 기억은.

"너무 많다. 요즘은 거의 매일 느낀다.

박이 1번홀에 등장하면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챔피언' 이란 대회 진행자의 소개가 뒤따른다. 이때마다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모든 경기는 그녀가 펼치는 것이고, 모든 공로는 박의 몫이다.

하지만 나도 그녀와 한 팀을 이뤄 우승에 보탬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

- 박과 언어장벽은 없는가.

"거의 없다. 세리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되묻는다.

나 역시 이해할 때까지 다시 설명한다. 세리의 영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는 것도 이러한 그녀의 자세 때문이다. "

- 라운드 도중 주로 나누는 대화는.

"다음 샷에 대해 얘기한다. 가끔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나눌 뿐이다. "

- 박의 캐디가 된 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올해 2월 하와이오픈 2라운드에 탈락했을 때였다.

당시 그녀는 내게 '트리 (케이블의 별명) , 왜 나는 우승을 못하지?' 하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미국여자프로골프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참고 기다리자' 고 말했다. "

- 끝으로 가까이서 지켜본 박을 평한다면.

"박은 매우 보기 드문 골퍼다.

재능도 뛰어나지만 언제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재능과 노력을 함께 갖추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그녀가 미국 LPGA를 석권하는 것은 당연하다. "

윈저 (캐나다 온타리오) =LA지사 허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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