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복권을 권장하는 美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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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여름 무더위를 무색하게 할 만큼 미국 대륙을 후끈 달궜던 '파워 볼' 복권 열풍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오하이오주 (州) 의 한 기계공장에서 일하는 13명의 근로자들이 공동구입한 복권 한 장이 행운의 '잭 폿' 을 터뜨려 두달간 누적된 2억9천6백만달러 (약 3천6백억원) 를 쓸어갔다.

복권구입 행렬에 가담했던 많은 미국인들은 이들의 기사를 읽으며 부러움 속에 일확천금의 꿈을 다지고 있다.

'이봐, 사람 일을 어찌 알겠어!' 라는 선전문구로 고객을 유혹하는 미국의 복권제도는 여러가지로 특이한 점이 많다.

우선 당첨액이 워낙 커 한 번 당첨되면 팔자를 고친다. 50여개의 숫자 가운데 5~6개를 적어내 추첨결과와 맞춰보는 로토의 경우 당첨금이 최소한 3백만달러. 당첨자가 없으면 고스란히 다음번으로 이월되기 때문에 당첨금이 금세 수천만달러까지 치솟는다.

한국의 주택복권처럼 '복불복 (福不福)' 으로 고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숫자를 적어넣도록 돼있고, 당첨 복권 판매업소에도 포상금을 주기 때문에 판매자가 진심으로 당첨을 염원해 준다는 점도 색다르다.

현재 미국사회에서는 현행 복권제도에 대해 사업주체인 주 (州) 정부가 앞장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뉴욕주의 경우 복권판매로 연간 15억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뉴욕주 정부는 이 돈을 교육.복지재원으로 활용한다. 복권을 사는 계층이 주로 중하위층이라는 점에서 "빈자 (貧者) 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공익을 위해 쓴다" 는 비난도 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비록 '아메리칸 드림' 으로 표현되는 기회의 나라지만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배우지도 못하고 특이한 재능도 없는 사람들에겐 '기회' 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거금 1달러' 를 투자해 로토를 사고, 이를 지갑에 소중히 간직한 채 추첨일까지 며칠간이나마 품어보는 달콤한 백만장자의 꿈마저 없다면 이들에게 인생은 너무 삭막할지 모른다.

뉴욕=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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