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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총성 없는 사이버 전쟁, 이젠 소설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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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이버 세계대전’은 이제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가.

8일 서울 경찰청에서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장이 ‘디도스(DDoS) 공격’에 대한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7·7 사이버 테러’ 사태를 놓고 보안 전문가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국경 없는 온라인 세상에서 각국이 적대국의 사이버 공간을 마비시키는 조직적 행동에 나서는가 하면, 이를 막으려는 온라인 보안부대가 속속 창설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안업체인 KTB솔루션의 김태봉 사장은 “올 들어 발생하는 사이버 테러 중에는 장난 삼아, 또는 정치적 의도로 한 단순 해킹을 벗어나 국가 간 사이버 전쟁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주요 공공기관과 금융회사·언론사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건, 다른 나라에서 사이버 대전(大戰)에 대비해 한번 테스트해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럴 경우라면 한국 정부와 주요 기관이 해킹 공격에 얼마나 신속히 대처하는지 보겠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도 이번 공격이 북한 또는 북한 추종세력이 감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발원지가 북한인 듯한 사이버 공격이 늘어나는 것으로 감지됐다. 우리나라 국방부도 최근 온라인 보안 대책을 마련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사이버 테러 대응 부대 창설과 전문인력 양성에 나섰다.

◆온라인으로 넘어간 전쟁=방송통신위원회와 인터넷·보안 업계에 따르면 20세기 제1, 2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줄어드는 대신 패권을 노리는 미국·중국이나 북한 등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사이버 전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서울여대 박춘식(정보보호학) 교수는 “각국 정부는 자기 나라 좀비PC에 심어 놓은 적성국 ‘사이버 세작(細作·간첩이라는 뜻)’과의 전쟁을 은밀히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철옹성이라는 미국 펜타곤(국방부)이 ‘해커들의 놀이터’로 전락하는 등 사이버 테러의 안전지대는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미 대선을 앞두고는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선거캠프의 컴퓨터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해커들에 의해 뚫렸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 정부 컴퓨터망의 사이버 테러는 지난해 5488건으로 전년 대비 40% 늘어났다.

중국 역시 사이버 테러로 정부 전산망이 해킹당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대만 출신으로 추정되는 해커들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만든 2009년도 정부 업무 보고서를 복제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온라인 워(War)’ 시나리오=보안업계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근 내부적으로 한반도 사이버 전쟁에 대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올 들어 북한 등이 국내 온라인 공간을 상대로 사이버 테러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징후 때문이다. 특히 재래전 발발 등 유사시에 국내 온라인망을 마비시키면 첨단 디지털로 무장한 군 전력은 크게 약화된다. 그 징후가 전국적으로 ‘포섭된’ 2만여대의 좀비PC에 의해 가시화했다는 판단이다. 평소에는 핵폭탄과 같은 악성코드를 좀비PC에 몰래 숨겨 놓았다가 때가 되면 뇌관을 터뜨려 주요 정부 전산망에 무더기로 악성파일을 발송해 다운시키는 것이다. 요즘엔 좀비PC에 심어진 악성코드 자체에 공격 명령어가 들어있어 원격으로 지령만 내리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상을 무차별 공격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내년에 국방 관련 사이버 테러를 총괄하는 ‘정보보호사령부’를 출범시키고, 매년 80명의 전문인력을 사병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김민석·이원호·김창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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