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한국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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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자 주인공 멜키어역의 김무열.과 여주인공 벤틀라역의 김유영. [뮤지컬헤븐 제공]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사춘기)’이 처음 무대에 오른 건 2006년 12월이었다. 유진 오닐 극장이었다. 풍경은 조금 낯설었다. 브로드웨이 극장은 머리 희끗한, 중·장년 관객이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작품엔 젊은 층이 유독 많았다. 유쾌한 뮤지컬과도 거리가 멀었다. 관객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빨려들 듯 작품에 몰입했다. 커튼콜땐 기다렸다는 듯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당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쏟아진 관심은 엄청났다. 오프-브로드웨이에 선을 보인 지 단 6개월만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작품에 대해 뉴욕 타임즈는 “브로드웨이는 이제 더 이상 그 전과 같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변화가 없는 단일한 세트,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배우들, 자살·동성애·섹스라는 금기시된 내용 등 작품은 기존 뮤지컬 문법을 철저히 파괴시켰다. 그해 ‘토니상’ 8개 부문 수상은 성공 시나리오의 정점이었다.

◆노골적인 정사신=그 화제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마침내 국내에 입성했다. 4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막이 올랐다. 사실 작품에 대한 기대는 진작부터 있었다. 브로드웨이의 가장 ‘핫(hot)’ 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니어들은 흥분했다. 그만큼 브로드웨이와 서울의 시간 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높은 로열티도 입방아에 올랐다.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고 ‘토니상’까지 받자 판권을 가진 미국 에이전트 회사는 돌변했다. 한국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입질을 하자 로열티는 순식간에 몇배로 치솟았다. 그 와중에 한국 제작사들끼리 서로 헐뜯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연출됐다.

무엇보다 궁금증을 유발시킨 건 ‘노출’이었다. 1막 마지막에서 10대 남녀 주인공은 아직 여물지 못한 감정을 가진 채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여성은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남성은 바지를 벗은 채 엉덩이를 보인다. 필름이 아닌 무대에서 이런 노골적인 장면은 극히 이례적이다. 한국 공연에서도 이는 그대로 재현됐고, 노출 수위와 청소년들이 관람해도 무방한가라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파격, 그 익숙함이여=논란이 많다는 건 관심과 기대의 증거다. 작품은 기대대로 안정적이었다. 무대 위로 올라온 라이브 밴드의 현장성도, 몸짓에 가까운 모던한 안무 역시 신선했다. 가벼운 것으로 넘쳐나는 이 시대, 첨예한 문제 의식 역시 관객의 갈증을 풀어줄 덕목이었다.

그러나 이런 결과물이 과연 한국 프로덕션이 잘해서일까. 작품은 원작을 철저히 옮겨왔다. 그러나 정서까지 이식되진 않는다. 작품의 주 음악은 얼터너티브 록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초반 풍미했고, 아직도 그 여진이 남아 있지만 한국에선 낯설기만 한 장르다. 배우가 제대로 구현해 내고 있는지, 객석이 흡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근본적인 지점은 작품의 컨셉트인 ‘파격’이다. 파격이란 기본과 정통성이 있어야 가능한 변주다. 브로드웨이는 100여년의 역사를 통해 그들만의 뮤지컬 문법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한국 뮤지컬에 과연 ‘기본’이란 게 있을까. 어쩌면 우린 최신 해외 뮤지컬을 서둘러 수입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는 콘서트형 뮤지컬이 자주 등장하면서, ‘헤드윅’ ‘쓰릴미’ 등 동성애·살인 등을 소재로 한 컬트형 뮤지컬이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으면서, ‘파격’이 기본을 대체한 형국이다. 이런 구조에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파격이 폭발력을 갖길 기대하는 건 무리 아닐까. ‘파격 피곤증’은 현재 한국 뮤지컬에 덧씌워진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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