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기부는 사회발전의 큰 지렛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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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얼마 전 지방 한 사립대학이 주관했던 이 대학의 오랜 후원자의 묘비 제막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후원자의 재정적 지원으로 대학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명문 사립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시기였음에도 뜻있는 기업인의 기부활동을 통해 이뤄낸 한 사례였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의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의 남다른 솔선수범은 단지 아름다운 일로 남기보다는 사회발전에 큰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개인기부의 중요성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이후부터는 세제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동안의 기업기부 편중에서 벗어나 개인기부가 민간기부의 주축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바람직한 기부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기부참여율의 상승, 개인기부 비중의 증가와 더불어 정기적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하는 기부자들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특히 많은 부를 축적한 계층의 기부활동 참여가 더욱 확산돼야 한다. 즉, 기부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비록 소액이지만 정기적으로 기부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도 많아야 하며, 다수 고액기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함께 필요하다. 이 두 기부자 경로를 통한 기부활동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상승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동시에 달성해야 할 과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경로를 통한 개인기부의 확산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우선 기부금액은 적지만 개인기부자들이 꾸준히 기부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을 돕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부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참여 체험을 통해 기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의 개인기부를 분석해 보면 자원봉사를 통한 참여의 체험이 우리 사회 기부계층의 저변을 단단하게 다지고, 더 나아가 차세대 기부층을 구축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개인기부자들의 기부금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비영리단체들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의 감시 기능도 중요하지만 이들 단체 스스로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한 노력을 다할 때 우리 사회의 건강한 기부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많은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의 기부활동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분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흠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귀중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훌륭한 결정에 대해 존경을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 배려는 기부자 당사자뿐 아니고 기부를 가능케 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큰 재산을 소유한 잠재적 기부자들이 제3자가 운영하는 비영리조직을 지원하기보다는 직접 공익재단을 설립해 사회공익활동을 수행하려는 경우가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과거 재단의 부정적인 기능을 염려해 도입되고 강화되어 왔던 주식출연에 대한 제약 등 재단의 설립·운영에 대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인 시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사회환원 소식은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민간, 특히 개인기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고 기부문화 정착에 필요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태규 연세대 상경대학장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