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외무회담 의미]'관계악화 이득없다'한발양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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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교관 맞추방사건으로 한달여동안 삐걱거렸던 한.러관계가 마닐라 외무장관회담 (26일) 을 통해 일단 제자리를 찾는 전기를 마련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내년봄 러시아방문과 아태경제협력체 (APEC) 회의 (11월) 기간중 정상회담 합의로 '관계복원' 및 '화해' 를 상징하는 굵은 매듭을 지은 것이다.

金대통령의 러시아방문 수락은 건강과 시베리아 탄광파업이라는 국내정세에 묶여 옐친대통령의 방한이 어려운 러측 입장을 배려해준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과 관련, 러시아의 '이행보장' 참여를 우리측이 확약한 것은 주목해 볼 부분. 비록 4자회담 합의결과가 나온 뒤 그 실천을 러시아가 서명, 보장한다는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측이 러시아의 '한반도 영향력' 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문서화한 것은 러측의 감정을 누그러뜨린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측은 제주도 무사증입국, 러시아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가입지원, 박정수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 9월초 러시아방문 등의 '선물' 과 함께 골치아픈 러시아의 '16억달러 빚독촉' 문제도 올 하반기 논의로 미뤄주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외양상의 이같은 '화해' 와 달리 한.러는 지난 90년 수교 이후 '관계재정립' 의 2라운드 국면에 이제 진입한 듯하다.

마닐라회담에서 러측은 3억달러의 S300미사일 12기와 대당 수억달러의 수호이 (SU) 37 구매를 타진하는 등 철저한 실리추구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우리측은 대북 (對北) 정보에 연연해 16억달러 빚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양국간 '물밑 신경전' 은 상당기간 계속될 조짐이다.

특히 러시아의 향후 '남북한 등거리 외교' 만은 묵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어서 갈등 뇌관은 잠재할 수밖에 없는 국면. 얽히고 설킨 한.러관계의 진정한 해결은 결국 金대통령 방러 등 양국의 정상회담을 통해서야 가능해질 전망이다.

마닐라 =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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