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세 들면 고급냉장고가 공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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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등으로 전셋집이 빠지지 않는 역전세난이 깊어지면서 지금까지 아파트 전세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 계약기간 만료 전에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세입자들은 속이 탄다. 중개 수수료 부담 뿐 아니라 수십만원에 달하는 이사비용을 대주는 것은 흔해졌고 경품도 등장했다. 경기도 시흥시 은행지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전세금을 85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낮춰도 3개월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100만원 상당의 고급냉장고를 내걸었다. 50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를 준다고 했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어 경품가격을 높였는데도 쉽게 나갈 것 같지 않아 여전히 걱정이다.

입주에 필요한 급한 돈을 마련하려고 세입자가 주인의 동의를 얻어 전세금을 대폭 깎아 다시 전세를 주기도 한다. 박모(38)씨는 전세기간이 1년 남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24평형 아파트를 자신의 전세금 9000만원 보다 2500만원 낮은 가격에 급전세로 내놓았다. 인근에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잔금을 치러야하는데 전세가 나가지 않아 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모자라는 잔금을 모두 융자 내기가 부담스러워 싸게 전세를 들여 급한 불을 꺼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계약기간이 끝난 주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44평형 아파트를 전세 주고 있는 최모(56)씨는 세입자가 계약이 끝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 하자 1억 6500만원이던 전세금을 1억3000만원으로 내려 간신히 재계약했다.

강서구 K공인 최모 사장은 "세입자를 새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여서 주인들이 기존 세입자를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전세금을 대폭 깎아 일부를 되돌려주거나 도배 등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빌라 주인 서모씨는 전세가 나갈 때까지 세입자에게 매달 30만원 주기로 하고 전세금 반환 요구를 버텨내고 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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