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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웅장함, 일본은 정교함 … 그런데 한국의 이미지는?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이라는 국가의 브랜드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글로벌 패션·문화 매거진 모노클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타일러 브륄레(41)는 ‘브랜드 경영’시대의 샛별이다. 인수합병(M&A)으로 불린 덩치를 믿고 덤빈 브랜드 컨설팅업체들이 그의 재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노키아와 스위스항공 등 글로벌 기업이 브랜드 컨설턴트로 그를 선택했다. 그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현대카드와 함께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중앙SUNDAY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수척한 느낌을 주는 그는 달변이었다. 캐나다인인 그가 20년 정도 영국인들과 부대꼈으면 그들 특유의 유보적인 말투에 익숙 해졌을 법한데도 그의 말은 거침없었다.

-한국 기업의 브랜드 경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통일돼 있지 않은 듯하다. LG는 컴퓨터와 텔레비전·냉장고 등을 만들어 파는데 어떤 나라에선 에어컨 회사로만 각인돼 있다. 다른 곳에서는 냉장고 회사로 알려져 있다. 삼성·대우·현대도 진출한 나라마다 다른 모습으로 인식돼 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역별로 잘 팔리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다른데.
“통일과 일관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팔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자 머리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가전제품에서 거대한 설비까지 만들고 있지만 그런대로 이미지가 통일돼 있다. 글로벌 기업은 통일된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사업 부문을 분리·매각하기도 한다.”

-삼성은 어떤가.
“7~8년 전 삼성의 브랜드 마케팅은 경이로웠다. ‘아 저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구나!’라고 혼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삼성의 브랜드 경영은 뒷걸음질 치고 있는 듯하다.”


-무슨 얘긴가.
“비행기를 타나 차를 모나 삼성의 파란색 브랜드가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알릴 공간이 없을 정도다. 포화상태다. 새로운 매체를 발굴하는 등 창의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열어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

-외국 기업 가운데 본보기가 될 만한 곳은.
“고급 변기를 생산하는 일본 토토를 추천하고 싶다. 다른 회사들이 변기를 마구 찍어낼 때 토토는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 고급화를 추구했다. 아주 일관된 브랜드 전략이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멋있는 빌딩엔 토토 제품이 꼭 있다.”

요즘 브랜드 경영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에도 적용되고 있다.‘국가 브랜드’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브륄레는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 쓴 칼럼에서 전략적인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한국이 브랜드 측면에서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중국은 ‘대량 생산’이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서비스’나 ‘정교함’ 등을 연상시킨다. 한국의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다. 전략을 분명히 세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이런 이미지가 형성된다. 아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서울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CNN에서 ‘하이서울’ 광고를 봤다. 서울이 효율적이고 역동적이란 곳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곳을 향해 가는지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 한국 전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칼럼에서 일본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서양인들이 한국 기업 브랜드를 잘 알고 있고 한국 제품을 많이 쓰고 있다. 문화적인 매력에 끌려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인들의 눈에 일본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화장품·애니메이션·음식 등 ‘소프트 문화(Soft Culture)’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와 교감할 것이 많다. 한국은 아직 컴퓨터·텔레비전 등 ‘딱딱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다.”

-동남아에선 한류 등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K-팝(Pop)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J-팝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접점을 일본이 한국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브륄레는 프랑스계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자란 뒤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회를 찾아 여기저기를 떠도는 21세기 유목민이라고 할 만하다. 그가 발행하는 모노클은 세계 50여 곳에서 동시에 판매된다. 글로벌화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한국 기업이 최근 10여 년 동안 추진한 글로벌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한국 기업의 현지법인이나 지사가 세계 곳곳에 있고 여기저기서 브랜드를 볼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가 아주 잘돼 있기는 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독일 항공회사 루프트한자에는 프랑스 출신 마케팅 이사, 영국 출신 PR 담당 등이 있다. 인력풀이 다국적이다. 전 세계에서 최상의 인재를 모아 쓸 수 있어야 기업 문화가 글로벌 시대에 맞게 형성된다.”

브륄레는 모노클 이전에 월페이퍼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성공시켰다.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에 어려운 일을 해낸 셈이다. 인쇄 매체가 인터넷 시대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인터넷 시대에도 호흡이 긴 글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일요일자 신문이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긴 글을 스마트폰(최신 휴대전화)으로 읽으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깊이 있는 분석과 흐름을 보여주는 글은 생명력도 길다.”

-일간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항이나 지하철 등에서 신문을 읽고 있으면 그의 정치적인 성향, 소득 수준, 관심사 등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신문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가 포장되는 셈이다. 신문은 자기 독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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