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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TV 광' 어떤 사람들이길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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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무료한 시간을 때워주는 '벗' 을 꼽자면 담배.만화.당구.전자오락 등등…. 96년 시작한 케이블 방송도 어느새 여기에 끼어들었다.

3년 만에 유료가입자 82만 4천여 명 (6월 현재) .심심풀이로 보다가 이제는 '발을 못 빼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게다.

지난 16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제1회 케이블매니어 선발대회' 결과를 발표했다. TV라는 특성상 '매니어 = 중독자' 라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응모자 1백58명 중 당선자를 포함한 본선 진출자 10명은 '무조건 많이 봐서' 뽑힌 건 아니다. 채널을 바꿔가며 시간을 죽이는 건 'TV 중독자' 에 가깝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 최대 관심사는 프로그램의 적절한 활용이다.

대부분 '볼만한 프로' 를 미리 뽑아 시청하는 꼼꼼함을 보인다.

케이블 컨버터를 다섯대나 설치해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여러 프로를 녹화.시청하는 사람도 있다. 당선자 김형찬 (37) 씨의 경우. 그의 방엔 비디오 테이프 1천여 개가 수북히 쌓여 있다.

96년 3월 가입 직후부터 녹화한 분량이다. 일주일마다 공테이프 10개씩을 구입한다. 방학때 고향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두 군데 모두 가입을 했다.

현재 국립음악원 석사과정에서 대중음악이론을 공부하는 그의 시청동기는 전공을 위한 '간접경험' 을 쌓기 위해서. 월간 가이드와 월별 편성표를 놓고 주간.일일 계획표를 짠 후 당일 시청프로와 녹화프로를 구분한다.

놓친 프로는 재방요청까지 한다.

초기엔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어 방송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안내에 소제목이 나와 있지 않는 경우는 전화로 문의도 한다.

그러다 보니 편성표를 집으로 보내주는 방송국도 생겼다. "

그렇다면 매니어들이 '케이블방송을 좋아하는 이유' 는 - .

첫째 "공중파가 싫어서" .시청률을 상전처럼 모시느라 10대 위주의 쇼와 드라마 일색인 공중파 방송이 싫다.

둘째 "공중파에서 찾아볼 수 없는 프로가 많아서" .가령 뮤직비디오나 공연실황을 자르지 않고 튼다거나 구하기 힘든 비디오 영화를 소개해주기 때문. 교양프로에 허기졌던 배도 채울 수 있다.

셋째 "문화비가 절약되기 때문" .이밖에 쉬는 시간에 끼어드는 '유치하고 조악한 광고' 가 주는 재미도 있단다.

물론 불만도 많다.

가장 큰 아쉬움은 전문성을 확보한 '간판 프로그램' 의 정착이 절실하다는 것. 재탕.삼탕 프로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여기에 이어진다.

시청자와 의사소통이 아직은 활발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듯 의견수렴이 좀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어떨까. 볼 프로가 너무 많아 즐거운 고민을 한다는 외국 시청자들 얘기가 멀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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