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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금감위의 '간접화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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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구조조정의 사령탑인 금융감독위원회의 정책스타일은 대체로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지침이나 기준을 직접 공표하기보다 가급적 남의 입을 빌려 전달한다. 부장급 실무자가 "A은행이 합병을 추진한다더라" 고 흘리거나 홍보실장이 "은행이 30% 감원할 것으로 안다" 는 식으로 얘기한다.

감독기관으로서 명시적 지시가 없기 때문에 은행들은 전문 (傳聞) 을 통해 금감위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분위기를 한쪽으로 몰고가면서 결국 기정사실화하는 기법이 곧잘 동원된다. 기업에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하면서 "선진국은 2백% 정도" 라는 토를 달았다. 그때부터 은행.기업은 2백%를 절대적 기준으로 알고 경영계획을 만들었다.

셋째, 알아서 하라면서도 늘 여운을 둔다.

빅딜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면서도 소극적인 기업에는 여신을 중단하겠다는 식이다. 부실은행 경영진에 대한 문책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넷째, 절차가 공식화되기 전에 반드시 사전조율을 한다.

은행이 외자유치를 하려면 꼭 금감위에 사전보고를 거쳐야 한다.

은행은 이런 저런 훈수와 지도를 받고 그에 따라야 추진할 수 있다.

금감위로서는 여러가지 내놓고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개혁속도를 빨리하기 위해서는 감독기관의 한계를 넘어선 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딱한 입장도 이해가 간다.

공개적으로 밀어붙이자니 시장원리를 다친다는 비난이 쏟아질테고,가만 있자니 개혁의지가 박약하다고 질타를 당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 지나치면 곤란하다.

잘되면 괜찮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우선 정책의 책임소재가 흐려진다.

훗날 법적 시비를 부르는 요인을 제공하기 십상이다.

해당 은행.기업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정책집행에 투명성이 떨어지니 행간을 읽어내느라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자주 생겨난다.

입장이 난처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공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구조조정의 속도도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책일 것 같다.

남윤호(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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