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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경찰의 현상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프랑스의 경찰과 교도당국은 아직도 자크 메슬린이라면 치를 떤다.

10여년간 경찰.교도당국을 마음껏 우롱하면서 살인강도와 탈옥을 일삼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5세 때인 지난 62년 은행강도 미수죄로 1년을 복역하고 나온 메슬린은 67년 캐나다로 건너가 백만장자 납치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면서 '탈옥의 명수' 로 불리기 시작한다.

복역 1년후 탈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유명한 생 뱅상 포르 교도소를 감쪽같이 탈출한 것이다. 탈옥후에는 동료를 탈옥시키려 다시 그 교도소를 찾아가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후 몇 년간 중남미를 무대로 강도살인 행각을 벌이던 메슬린은 70년대초 활동무대를 모국인 프랑스로 옮긴다.

잠깐 사이 수백만프랑을 벌어들이고 '현대의 로빈후드' 를 자처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심을 베풀기도 하던 그가 체포된 것은 74년 3월 8일. 그러나 재판 도중 판사를 인질로 삼아 탈출에 성공했고, 77년 다시 체포돼 20년 형을 선고받아 역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라 상테 교도소에서 복역중 1년만에 탈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경찰에 최대의 망신살이 뻗친 것은 탈옥 직후 메슬린이 자신에게 20년형을 선고한 판사의 납치를 시도했을 때였다.

판사의 아들에게서 연락을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메슬린은 "메슬린은 위층에 있으니 빨리 잡으라" 면서 유유히 현관을 빠져나간 것이다.

평소 "산 채로 체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메슬린은 79년 11월 2일 경찰의 총격을 받고 마침내 사망했다.

메슬린한 사람 때문에 프랑스 경찰의 신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경찰력이 총동원돼 체포에 혈안이 돼 있는 중에도 그는 경찰관 행세를 하며 곳곳에 출몰하는가 하면 언론과 인터뷰를 자청해 "교도소의 인권부재를 고발한다" 는 등 우롱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탈옥수 신창원은 메슬린과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경찰을 우롱한 행위는 난형난제 (難兄難弟) 라 할 만하다. 경찰이 탈옥수에게 총까지 빼앗기는 판국이니 말이다. 경찰이 현상금을 1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대폭 올린 것만으로도 그 초조감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이 '경찰의 돈' 이 아닌 '국민의 혈세' 임을 생각한다면 결국 국민의 돈으로 신창원을 잡자는 뜻인지 언뜻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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