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총재선거 결국은 파벌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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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민당의 총재선거 (24일) 판도는 '국민여론은 고이즈미 (小泉) 후생상, 언론.경제계는 가지야마 (梶山) 전 관방장관 지지, 그러나 뚜껑을 열게 되면 오부치 (小淵) 외상'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론과 자민당 내부논리간에 뚜렷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주요신문들이 22일 자민당의 중.참의원과 지방대표 등 총재선거권을 가진 4백13명의 대의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부치는 1백80명의 지지를 받아 과반수 (2백7명)에 근접하는 표를 다졌다.

고이즈미도 출신파벌인 미쓰즈카 (三塚) 파의 지지에 힘입어 1백여명을 획득한 반면 다크호스로 지목되던 가지야마는 52명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오부치를 지지하는 대신 주요파벌들끼리 차차기 총재선거 (내년 9월)에서 '총재는 미야자와파의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 간사장은 옛 와타나베파의 야마사키 다쿠 (山崎拓)' 로 나눠 먹기식 자리 안배가 끝났다는 관측이다.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제기된 "파벌간 담합은 자민당을 망친다.

총재선거는 당당하게 치러져야 한다" 는 주장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조짐이다.

이들 부동층표를 기대했던 가지야마와 고이즈미는 막판에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비교적 파벌에서 자유로운 지방대표 (47명) 의 표가 어느쪽으로 쏠릴지가 남은 관건이다.

세 후보가 내놓은 정책도 ^감세^불량채권 정리^재정구조개혁법 동결 등으로 뚜렷한 차별성이 없어 정책대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동안 잠잠하던 파벌의 논리가 다시 득세하자 자민당사 주변에서는 "일본 총리선거가 나가타초 (永田町.일본 국회가 있는 곳) 의 운동회냐" 는 비아냥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총재선거를 계기로 파벌논리는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게 일본 내부의 평가다.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 신문은 "파벌을 등에 업지 않은 가지야마가 출마하고 소장파의원들이 고이즈미를 지지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흐름" 이라며 자민당도 여론과 시장반응을 더 이상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민당도 파벌 비난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오부치가 새로운 이미지 구축을 위해 과감한 경제정책을 천명하는 등 '뉴 (new) 오부치 플랜' 을 내건 것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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