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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신창원 신드롬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탈옥수 신창원이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경찰의 손을 뿌리치고 안개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연일 1천여명의 경찰특공대와 경찰견이 서울 포이동 일대를 이잡듯 샅샅이 뒤졌지만 그의 행적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신창원은 기발하고 치밀한 탈옥계획을 준비해 이를 성공시킨, 머리가 비상한 살인범이다. 탈옥한 후 전국 방방곡곡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렸다.

그는 대도 (大盜) 조세형에 못지 않은 담대한 범죄자다.

흔히 탈옥수가 체포를 두려워해 지하로 잠적하기 일쑤지만 그는 오히려 대낮에 절도행각은 물론 애정행각까지 벌여 왔다. 대구에서 다방 여종업원을 사귀어 동거생활로 들어갔고 그녀를 임신시킨, 실로 배짱이 두둑한 탈옥수다.

그는 또 부유층을 대상으로 대담한 절도행각을 벌여 왔고 고급빌라만을 골라 고급승용차.현찰.달러를 다량으로 절도했다.

서울의 포이동에서 황급히 도주하다가 떨어뜨린 일기장 속에서 그는 탈옥의 동기가 교도관으로부터 받은 비인간적 대우 때문이라고 밝혔고, 또 재수감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선언해 우리의 교도행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의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탈옥장면, 수차례에 걸친 숨막히는 도주행각,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대담한 절도행위는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음은 물론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까지 갖게 만들었다.

그러한 본보기가 바로 신창원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만화이며 PC통신에 띄워진 동정의 글들이다.

PC통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렸다.

"신창원이가 영원히 안잡혔으면 좋겠어" "그가 나에게 오면 숨겨줄거야. " 그러나 신창원, 그는 어디까지나 살인범이며 탈옥수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 절도행각을 벌이고 있는 흉악범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신창원을 동정하는가.

심리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첫째,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반작용 (反作用) 해 신창원에 대한 연민으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경찰은 주민의 잦은 신고와 불심검문으로 그를 쉽사리 체포할 수 있었으나 번번이 그를 놓쳤을 뿐 아니라 경찰이 휴대했던 총까지 빼앗기는 수모 (受侮) 를 당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경찰조직이 한 명의 탈옥수의 손에 우롱당하는 현실에서 국민은 분노하고 좌절하며 그 반대급부로 범죄자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만들었다.

둘째, 부유층에 대한 국민의 나쁜 감정이 신창원의 절도행각에 면죄부를 주었다. 우리는 과거 대도 조세형이 최상류층에서 훔쳐낸 어마어마한 보물을 직시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보물중에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었는데 아무도 자기 물건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한마디로 한국 부유층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신창원이 포이동에서 떨어뜨리고 간 수천만원의 원화와 수만달러에서 국민들은 또 다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신창원을 대도나 의적으로 착각하게 됐다.

셋째, 교도관에 대한 불신이 반작용했다.

신창원이 정말로 교도관으로부터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 교도소의 비리로 짐작해보건대 그의 고발이 사실일 것으로 국민에게 비춰졌고 따라서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싹텄다.

넷째, 국제통화기금 (IMF) 통제하의 국민적 불만이 변형돼 신창원에 대한 동정을 유발했다.

지금 수많은 국민이 정부와 재벌의 IMF 과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찰과 교도조직은 무능하고 부패하며, 부유층도 반성의 기색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금모으기.달러모으기로 나라를 구하려고 발버둥치는데 부유층은 아직도 달러를 빼돌리고 현금을 깊숙이 감추고 있다.

그러나 신창원 그는 살인.탈옥.절도를 일삼은 극악한 한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와 재벌에 대한 국민의 나쁜 감정이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를 연민하는 것으로 변형돼서는 안된다.

그러한 것은 한국민의 도덕불감증을 만방에 널리 알리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훈구(연세대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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