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구조조정이냐 주룽지 중국총리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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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개혁.개방의 전도사' 를 자처했던 주룽지 (朱鎔基) 중국총리가 성장과 개혁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올 상반기중 경제성장률이 91년 이후 가장 낮은 7%에 그치면서 지난 3월 총리취임시 약속했던 국유기업.행정.금융분야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위기와 엔화 약세의 여파로 중국의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은 올해 목표치 8%를 달성하기 힘들 전망이다.

朱총리 등 중국 지도부는 아시아 경제위기의 파고가 밀려들자 올들어 세차례의 금리인하에다 ▶ '중국판 뉴딜 정책' 으로 불리는 대규모 내수 (內需) 부양책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방안 ▶밀수단속 강화 등 각종 대책을 쏟아놓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상하이 (上海) 엔 올해 성장률 목표를 당초 10%에서 12%로 올려 달성하라고 독촉중이다.

장쩌민 (江澤民) 국가주석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중난하이 (中南海)에선 최근 '바오바 (保八.8%를 지키자)' 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고 한다.

朱총리는 중국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당장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개혁을 밀어붙이다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그 후유증은 엄청나다.

특히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샤강 (下崗.정리휴직) 이란 명목 아래 직장을 잃은 1천4백만명의 실업자들은 정치.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태풍의 눈이다.

당초 목표대로라면 오는 2000년까지 국유기업 노동자 가운데 30%인 2천4백만명 가량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江주석도 최근 사석에서 "샤강 노동자들이 '정치태풍' 을 몰고올지 모른다" 며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 정부가 성장쪽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는 조짐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정원의 50%를 줄이기로 한 공무원 감원작업은 이미 명단제출 기한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부처는 감원규모를 20% 정도로 낮출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 30만개 이상의 국유기업 가운데 대형기업들의 개혁속도는 눈에 띄게 완만해지고 있다.

이는 결국 중국 경제의 시장개방과 세계무역기구 (WTO)가입 등을 늦추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택제도 개혁을 위해 이달부터 추진됐던 주택매매제도는 베이징 (北京).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잇따라 시행이 유보됐다.

특히 아시아 경제위기에 자극받아 한때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부실금융기관 폐쇄 및 불량채권 정리 등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성장과 개혁이란 두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는 朱총리가 과연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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