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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파업 46일째, 적금도 깨고 딸 휴학까지 시켰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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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쌍용자동차 조립라인에서 25년째 일해 온 이모(50)씨는 지난달 26일 ‘회사는 살려야 한다’며 노조가 점거 중인 경기도 평택공장에 진입했다. 극렬한 ‘노-노 충돌 사태’ 끝에 물러선 이씨는 여러 통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너희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험한 협박. “이를 보낸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형, 아우 하며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라 참담했다”고 그는 말했다.

쌍용자동차 서울 청담동 영동영업소의 썰렁한 매장 모습. 쌍용차의 파업 장기화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일선 영업소는 팔 차량이 없어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쌍용자동차 제공]

물질적 고통도 적지 않다. 이씨를 비롯한 쌍용차 임직원들은 3월부터 넉 달째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몇 년씩 부어 온 적금·보험 등을 깨서 살고 있다는 호소다. 그는 즐기던 등산을 못 간 지 오래고 가족끼리의 외식은 언감생심이다. 경조사비나 교육비 같은 회사 복지 혜택도 끊겼다. 큰딸이 대학 1년생인 이씨는 “자녀가 대학생인 동료 중에 휴학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6일로 파업 46일째를 맞는 ‘쌍용차 사람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리해고된 976명, 희망퇴직한 1670명, 남아 있는 4454명, 250여 협력업체 직원…. 고생하는 쌍용차 사람들은 가족을 포함해 어림잡아 20만 명이다.

◆남은 자의 고통=쌍용차 직원은 1월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퇴직금과 월급을 거의 받지 못해 생계가 막막하다. 희망퇴직자 가운데 수백 명은 아직도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송승기 생산담당 부장은 “근로복지공단이 체불임금 사업장 직원에게 주는 700만원의 대출을 임원부터 직원까지 안 받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파업 과정에서 동료들끼리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주고받는 일도 많다. 점거 농성 중인 노조원과 임직원들의 충돌이 지난달 26, 27일 일어났을 때 수십 명이 부상했다. 한 달 전 쌍용차를 희망퇴직한 김모(33)씨는 2일 경남 진해시 남양동 조선기자재공단 공터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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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는 더 죽을 맛=생산 중단이 길어지면서 쌍용차 협력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다. 쌍용차에 따르면 이 회사 납품 의존도가 50% 이상인 1차 협력업체 30개 중 5일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간 곳은 3곳, 휴업은 23곳이다. 10곳 중 9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여기에 2차 협력업체 333개를 합친 363개 협력업체에서 최근 6개월 새 직장을 잃은 사람은 3399명으로 집계됐다.

무선 리모컨 등 전장 제품을 공급하는 모토텍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세 차례 구조조정을 했다. 이 과정에서 180명 직원의 절반 이상인 100명이 회사를 떠났다. 김석경 사장은 “올 들어 매출이 거의 없어 신용보증기금 같은 곳에서 빌린 20억원으로 남은 직원의 월급을 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협력업체 대부분이 다음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사원들은 신차 생산이 중단돼 아예 손을 놓았다. 서울 구로영업소의 김규업 부장은 “지난달부터 한 대의 차도 생산이 안 돼 전시차마저 모두 판 다음 일거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수원 연구소장(상무)은 “연구원들은 좋은 장비가 가득한 연구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협력업체 사무실을 전전하면서 기초적인 연구업무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생 여부 불투명=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쌍용차의 회생 여부는 안갯속에 빠졌다. 쌍용차는 인력 구조조정과 유휴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포함한 회생 계획안을 9월 중순까지 법원에 내야 한다.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와 법원이 이 회생안을 받아들이면 운영자금이 지원돼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 파산 가능성이 커진다. 최상진 기획담당 상무는 “자금이 지원될 때까지 차를 만들어 판 현금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생산라인이 정지돼 현금 유입이 ‘0’에 가깝다”고 전했다. 쌍용차는 지난달 내수 판매에서 재고분 197대(수출 포함 217대)를 파는 데 그쳤다.

최악의 경우 법원은 9월 이전에 회생 절차를 중단하고 파산 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다. 회사로선 회생 계획안을 제출해 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이승녕·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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