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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탄생 100돌 가족들 회고록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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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방에서 전투하느라…. 나이는 들었지만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결혼하는 일 한번 생각해 보지 않겠소?"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부인 줘린(卓林) 여사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늘 말이 없던 사람. 하지만 둥근 얼굴에 항상 깊은 속내와 강철 같은 의지를 감추고 살았던 사람.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돌린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8월 22일)을 기념해 쓰촨(四川) 인민출판사가 펴낸 도서 '영원한 샤오핑(永遠的小平)'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은 덩의 부인과 가족, 비서, 운전사 등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이들의 말을 담고 있다. 덩의 사람됨과 애정, 국가관 등 '인간 덩샤오핑'의 모든 것이 실려 중국 매체로부터 '덩의 삶을 들여다보는 완결판'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우선 한적한 골목에 살았던 최고 지도자다. 다른 고위 지도자들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중난하이(中南海)에 거주하며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했던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1973년 복권 이후 저잣거리의 생활 소음이 그대로 들려오는 골목 안에서 살며 인민들과 호흡을 같이했던 것이다. '인민을 위해 일한다(爲人民服務)'는 그의 신조였다.

54년부터 그의 안전경호를 책임졌던 장바오중(張寶忠)은 "수장(首長:어른, 덩을 지칭)은 외출시 경호차량을 한대라도 더 줄이려고 애를 썼다"고 말한다. 또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며 교통통제를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곤 했다. 그는 또 '말이 없었던 사람'이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겼던 그는 식구 중에 누가 과장된 이야기를 할라치면 "쓸데없는 소리(胡說八道)"라며 말을 자르는 습성이 있었다고 한다. 둘째딸 덩난(鄧楠)의 회상이다. 자녀와 손자를 교육할 때도 원칙이나 이론을 동원해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 자신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후손들을 가르쳤다. 가족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면 "말썽거리는 곧 지나가게 마련이다. 너무 나가지 마라"는 말만 남겨놓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손자들이 서재로 들어올 경우 대처 방법은 초콜릿 상자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스포츠는 축구. 1973년 복권될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도 중국 국내 축구경기장이었다.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릴 때는 모든 경기를 빠뜨리지 않고 관람했으며 공무로 부득이 놓치는 경우엔 부하에게 녹화를 지시, 일을 끝낸 뒤 보곤 했다. 축구 외에도 그는 체조와 농구.배구.탁구 등 스포츠 대부분을 좋아했다. 줄곧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그는 장년기엔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역사서를 선호했으나 말년엔 무협지를 탐독했다. 또 외국 소설에도 커다란 흥미를 보였다고 가족들은 회고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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