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여자를 오래 부려먹는 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잡지사 명함을 건네기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외모를 가진 덕에 색다른 어필이 필요할 때마다 써먹는 게 있다. “제가 좀 모라자서요. 한 회사에 19년을 다녔습니다.” 이 말이 가진 힘이란 묘해서 무관심했던 상대도 자리를 고쳐 잡고 그럭저럭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 최소한 스카우트에서 비껴간 무능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봐주는 쪽이 더 많은 것 같다.

짐작대로 잡지사는 야근과 밤샘, 출장이 많은 ‘빡센’ 업종이라 드센 여자도 많고 퇴직과 이직도 잦다. 이 가운데 20년 가까이 한 우물에서 생존한 나는 프라다를 입은 악마도 아니고, 잇백에 목매는 신상녀도 아니며, 기막히게 글을 잘 쓰는 ‘끼’ 넘치는 잡지쟁이도 물론 아니다. 더구나 아이 둘을 매달고 허덕이며 살아왔으니 스스로도 19년이라는 세월에 대견하거나 기막힐 때가 있다.

대체 무엇이 평범한 아줌마를 19년씩이나 한 회사에 다니게 했을까. 우선은 잡지 업의 본질과 나의 주특기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만은 통했을 테고, 둘째는 이상하게 구는 윗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만큼 하기에 급급해 다른 데 눈 돌릴 틈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덧붙여 나에겐 사적인 이유가 두 가지 더 있다. 결혼하기 전 기자 초년병 시절에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는 밤새우고 늦게 출근하는 날에 전화를 걸어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빨리 준비하고 나가라. 어떤 회사가 늦게 다니는 사람 좋아하냐.” 전날 밤을 새웠다고 해도 늘 똑같은 소리다. 큰 애 낳은 병실에 오셔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운다더라”며 은근히 둘째를 반대하기도 하셨다. 딸자식 공부시켜 좋은 직장에 취직시킨 어머니의 이런 대단한 자부심 앞에서 ‘좀 쉬고 싶습니다’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죽자고 회사에 다닐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탓이다.

후배들도 보면 대개 부모님의 시각이 기자 수명과 직결된다. 새벽이고 밤중이고 언제 들어가든 “내일 몇 시에 깨워줄까”라는 부모 밑의 후배들은 그만둘 생각을 못한다. “무슨 놈의 회사가 애 뼛골을 다 빼먹냐. 왜 꼭 밤을 패가면서 일을 시키는 건데?” 하는 부모를 둔 후배들은 오래 못 견디고 떠난다.

결혼한 사람에겐 남편의 태도도 결정적이다. 사무실에서 원고 쓰고, 편집하는 마감인 걸 뻔히 알면서도 1시간에 한 번씩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성화를 해대면 결국 오래 못 버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감할 때 떡볶이 사오고, 차 대기하면서 군소리 없이 기다려 준 남편들도 그다지 긍정적인 유형이 못 된다. 제풀에 지쳐 서비스를 멈추는 날이 오면 오히려 그게 더 말썽인 눈치다.

물론 내 남편도 마누라 오래 부려먹을 유형이다. 마감 일요일에는 출근하는 뒤통수에 대고 “돈 많이 벌어와!”라며 아이 손을 잡아 함께 흔들고, “그렇게 힘들면 그만 둬!” 실수로라도 이 말 한 번을 뱉은 적이 없다. 아이 둘 낳고 한참을 힘들어서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을 때는 이렇게 꾀었다. “잡지의 꽃이 편집장인데 지금 그만 두긴 아깝다. 편집장까지만 해봐라.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다.” 결국 기자를 지나 꽃이라는 편집장을 지나 이름도 거창한 본부장까지 왔다. 지금은? “차 나올 때까지는 다녀야지”라는 말은 안 한다. 이제는 속을 마누라도 아니고, 속일 자신도 없는 모양이다.

이숙은‘HEREN’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