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기념식 정가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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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없이 17일 탄생 (제정) 반세기 '생일상 (기념식)' 을 받았다.

기념식에는 윤관 (尹관) 대법원장.김용준 (金容俊) 헌법재판소장 등 각계 대표 5백여명이 참석했으나, 정작 제헌절 행사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참석자는 60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국민신당 이만섭 (李萬燮) 총재를 제외하곤 정당 대표들마저 모두 불참하는 바람에 기념식은 '반쪽' 에 가까웠다는 평가.

이렇듯 생일상을 차릴 주인이 변변히 없는 탓인지 국회 의사당 중앙홀의 기념식은 '감격' 과 '기쁨' 이 실종된 채 진행됐다.

의원들은 경색된 정국을 반영하듯 대개 굳은 얼굴로 입장했으며, 여야 의원간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정당대표 자격으로 초청된 국민회의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과 한나라당 조순 (趙淳) 총재는 본인들의 '7.21 재.보선' 선거운동 때문에 불참했고, 자민련 박태준 (朴泰俊) 총재는 부산 해운대 - 기장을 보선 지원차 내려가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에선 김영배 (金令培) 전 국회부의장이, 자민련에선 김용환 (金龍煥) 수석부총재가, 한나라당에선 이한동 (李漢東) 총재권한대행이 각각 참석. 이런 가운데 김수한 (金守漢) 전 국회의장은 경축사에서 "현재 여러가지 사정으로 국회는 후반기 원구성조차 하지 못한 채 장기간 표류하고 있어 국회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며 국민에게 대표 사과.

또 김인식 (金仁湜) 제헌의원동지회장은 "지난날 우리 정치사회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졌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 공동체는 심각한 해체위기를 맞고 있다" 면서 "정치는 깨끗하고 효율적인 체계로 거듭나야 한다" 고 지적, 후배 정치인들을 따끔하게 꼬집었다.

한편 기념식에 앞서 한나라당 의원 80여명은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를 맨 채 '헌정회복' 이라고 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헌정수호결의대회를 가졌다.

하순봉 (河舜鳳)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대회뒤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듯 넥타이를 다른 것으로 바꿔 매고 기념식에 참석했고, 복장을 그대로 유지한 이한동 대행은 카메라가 자신의 가슴에 매달린 검은색 '헌정회복' 리본에 집중되자 중간에 슬쩍 리본을 떼어버렸다.

한편 이날도 여야는 각각 반성의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성명을 통해 국회 공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구태 (舊態) 를 계속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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