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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커지자 연쇄살인범만큼 강하게 처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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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28면

‘화이트칼라 범죄(White-Collar Crime)’에 대한 처벌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버나드 메이도프(71·사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이 650억 달러(약 84조원)에 이르는 폰지(다단계 금융수법) 사기를 저지른 혐의가 인정돼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아직 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50년은 미국 화이트칼라 범죄 가운데 가장 긴 형량이다.

美, 화이트칼라 범죄 처벌의 역사

『CEO의 두 얼굴』의 지은이인 레너드 세일즈는 지난달 30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말이 등장한 이후 가장 긴 형량”이라며 “미 사법부가 그런 범죄를 연쇄살인과 같이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말은 1939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 사회학자인 에드윈 서더랜드가 그해 12월 27일 미 사회학회 모임의 연설에서 처음 제시했다. 그 배경에는 리처드 휘트니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 스캔들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친구이기도 한 휘트니는 빚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 거래소 연기금까지 횡령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이 38년 드러나 전 미국이 떠들썩했다. 그가 5년형을 받고 교도소로 가는 날 뉴욕 중앙역에 수천 명이 몰려들어 구경할 정도였다. 휘트니도 2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하지만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미국은 오랜 세월 관대했다. 18대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가 백악관에서 나온 뒤인 1884년 금융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가 출자한 증권사인 그랜트&워드의 경영자가 투자자의 돈을 떼먹고 달아난 사건이었다. 그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점이 드러났지만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지는 않았다. 단지 파산하고 말년을 불운하게 지냈을 뿐이었다.

미국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본격적으로 형사처벌하기 시작한 때는 1920년 이후다. 대표적인 예가 ‘폰지 사기’라는 말을 낳은 찰스 폰지였다. 그는 다단계 기법으로 돈놀이를 하다 20년대 초 파산하면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3년 반 만에 풀려났다.

선고 형량이 10년을 넘어서기 시작한 때는 1990년 이후였다. ‘정크본드의 황제’로 불린 마이클 밀켄이 90년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미 투자은행 드렉셀번햄램버트의 임원인 그가 내부자 거래와 시세 조종을 한 혐의가 인정됐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복역한 기간도 2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전염성 탐욕』 등을 쓴 프랭크 파트노이 샌디에이고대(법학) 교수는 “규제 완화 등 1990년대 시대 흐름에 영향받은 미 사법부가 22개월 만에 밀켄을 풀어 주는 바람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90년대 후반 화이트칼라 범죄가 인터넷 거품과 맞물려 기승을 부렸다. 미 엔론·월드컴·타이코 등의 회계 부정이 저질러졌다. 미국 사회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사법부가 엔론 경영진을 단죄했다. 엔론 최고경영자(CEO)인 제프리 스킬링에 24년4개월형을 내렸다. 그는 현재 미네소타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후 전 월드컴 CEO인 버나드 엡버스와 타이코의 데니스 코즐로스키 등이 잇따라 25년 안팎의 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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