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캄보디아 국민차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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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에서 서쪽으로 약 250㎞ 떨어진 코콩(Koh Kong)은 휴양도시다. 그렇다고 여느 휴양도시처럼 관광객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곤 있지만 태국에서 넘어오는 관광객이 아니면 별다른 수입원이 없다. 태국 국경에 인접해 있는 호화로운 호텔도 주말이 아니면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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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캄보디아 쌀 경작지. 캄보디아는 농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2. KH모터스의 이교형 사장이 공장 부지앞에 서 있다.

기자가 도착한 지난 22일에도 조그만 휴양도시 코콩은 고즈넉했다. 하지만 유독 코콩경제자유구역 입구만은 사람들로 붐볐다. 번듯한 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어떤 기업도 투자하지 않은 이 경제자유구역에 1호 투자기업의 기공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최초 자동차 공장 만든 이교형 사장
10년 중고차 수출 끝에 자동차 조립공장 건설
해외르포(2)

경제자유구역 입구 행사장에선 먼저 한국식 돼지머리와 팥시루떡, 그리고 통째 바비큐된 돼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식 고사로 기공식을 대신한 이날 행사는 캄코모터(KamKo motor)가 주관했다. 한국의 무명 중소기업인 KH모터스(49%)와 캄보디아의 3대 재벌그룹인 LYP그룹(51%)의 합작법인이다.

캄코모터는 올해 말까지 조립공장을 완성해 내년부터 현대자동차의 일부 모델을 현지에서 조립생산할 예정이다. 우선 싼타페, 베라크루즈, 스타렉스 같은 SUV와 RV 위주로 생산하고 차차 소형차나 고급승용차 쪽으로 모델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지 조립생산 외에도 이미 지난 2월부터 현대자동차의 캄보디아 판매권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캄코모터는 3년 내에 캄보디아 신차시장에서 현대차의 점유율을 5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현대차의 품질이 좋아졌다지만 도요타를 비롯, 일본 차들이 선점한 시장을 이렇게 빨리 뒤집을 수 있을까?

현대차, 일본차보다 30~40% 싸게 팔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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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KH모터스의 이교형 사장은 “지난 2년여간 협상 끝에 수입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 부가가치세, 특소세 등을 획기적으로 낮췄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 앞으로 캄코모터에서 생산되는 현대차는 관세, 부가가치세, 특소세 등 35%의 세금만 부과된다.

다른 완성차들이 115%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이 사장은 “뛰어난 가격 경쟁력으로 3년 내에 캄보디아의 국민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공장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올해 말까지 캄코모터가 현대차로부터 수입하는 자동차 200대에 대해 같은 조건의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캄보디아에서 현대차는 인근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생산하는 동급의 일본 차보다 30~40% 싸게 팔 수 있다. 이런 혜택은 하루아침에 얻어낸 것이 아니다. 이 사장은 1999년부터 캄보디아에 중고차를 수출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경제 재건이 막 시작된 당시, 캄보디아에는 신차보다는 중고차가 더 필요했다.

4~5년간 중고차 수출로 꽤 재미를 봤지만 그의 눈에는 캄보디아의 변화가 들어왔다. 의류공장이 곳곳에 지어지면서 경제가 급속히 발전했고, 고급 차를 살 여유가 있는 부자들이 생겨났다. 거리에는 포르셰, 렉서스, 도요타 랜드크루즈 같은 고급 차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웃한 베트남은 이미 중고차 수입을 출고된 지 5년 이내의 차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캄보디아도 곧 중고차 연식규제나 배기가스 규제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여기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한국 사업자들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이 사장은 더 이상 중고차로는 캄보디아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한국의 새 차를 들여와 팔아야 미래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115%에 이르는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현대차의 가격이 인근국가에서 생산되는 도요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쌌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세금을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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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콩 경제자유구역 입구.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로서도 특정 국가의 제품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었다. 이 사장이 조립공장을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현지 파트너를 찾았다. 현지에서 조립공장을 짓고, 안정적으로 사업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사업가와 손을 잡아야 했다.

중고차 수출할 때 친분이 있었던 교통부 장관이 2004년 캄보디아의 재벌그룹인 LYP그룹의 리용팟(Ly Yong Phat) 회장을 소개시켜줬다. 어렵게 만나 한참을 설명했지만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리용팟 회장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사장은 해외에서 유학을 한 리 회장의 딸에게 캄보디아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설명했다.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 3일을 기다렸다. 딸의 도움으로 리 회장을 만나 다시 설명하자 리 회장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사업파트너가 됐다.

올 9월까지 프놈펜에 전시장 3곳 설치

든든한 현지 파트너를 구한 뒤에는 캄보디아 정부와 현대차 양쪽을 설득했다. 특히 의류공장 외에 변변한 제조 공장이 없는 캄보디아 정부를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다. 이 사장은 인근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에서 조립 공장에 세금 혜택을 주는 사례를 설명했다.

또 캄보디아에 자동차 조립 공장이 들어설 경우 자동차 부품 관련 기술 획득과 고용창출이 된다는 점도 주지시켰다. 여기에 캄코모터에 주는 세금혜택보다 신차보급으로 인한 연료 절감, 유지비용 및 사고 감소, 환경 개선 등의 효과가 금전적으로도 더 크다는 점도 설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정부로부터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캄코모터 현지법인장인 조영대 이사는 “캄코모터가 잘되면 우리뿐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과 캄보디아 정부에도 큰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에는 캄보디아에서 획기적인 세금 혜택을 받은 것으로 설득했다.

작은 나라로 세분화돼 일일이 현지법인을 운영할 수 없는 현대차 입장에서도 캄코모터가 계획대로 된다면 반가운 일이었다. 그동안 현대차는 캄보디아에서 연간 20~30대밖에 새 차를 팔지 못할 정도로 실적이 미미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현영길 현대차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은 “이교형 사장 같은 분이 있어야 현대차가 세계 곳곳에 침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난관을 뚫고 올해 2월 캄보디아 훈센 총리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았고, 3월엔 현대차와 계약도 마쳤다. 아무리 합작이지만 작은 중소기업에 현지 투자는 만만치 않았다. 합작법인 설립과 현지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돈만 70억원에 달했다. 다행히 베트남에서 상용차 수출이 활기를 띠고 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40억원이라는 돈을 적시에 지원해 줬다.

신보의 곽성철 팀장은 “중소기업이지만 사업을 역동적으로 하고 있었고, 해외 투자도 실질적인 성과가 있다는 점에서 신보의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16만5000㎡(약 5만 평) 공장이 12월에 완공되면 우선 연간 1000대 정도의 자동차를 조립생산할 계획이다.

공장 가동 첫해인 내년에는 약 150여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생산대수가 늘어나면 고용 규모와 현지 부품 조달 비율도 늘어난다. 자동차 관련 기술이 전혀 없는 캄보디아 인력은 9월부터 현지와 한국에서 교육을 시킬 계획이다. 현지 공장장인 김영재 이사는 “제조업 경험이 전무한 캄보디아에서는 기초적인 기술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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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부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캄코모터 측은 2018년까지 조립생산을 1만 대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장 외에도 프놈펜 시내에 3곳의 전시장을 올해 9월까지 완공해 현지 판매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속첸다 CDC 사무총장은 “캄코모터는 캄보디아 외국인 투자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큰 문제는 다 해결했으니 다시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나야죠.” 1년에 반 이상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보내는 이 사장은 다시 미얀마로 떠났다.

“개척자에게 충분한 인센티브 준다”

속첸다 CDC 사무총장

CDC(Council for the Development of Cambodia: 캄보디아개발위원회)는 국가의 재건 및 외국인 투자에 관한 조건과 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다.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센 총리가 의장을 맡고 있다.

속첸다(Sok Chenda) CDC 사무총장(장관급)은 이 위원회의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캄보디아의 대표적 엘리트 관료인 그는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Aix en Provence)지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후 프랑스의 민간 기업에서 근무했다.

1993년 고국인 캄보디아로 돌아와 관광부 차관을 4년간 역임했고, 97년부터는 훈센 총리가 의장인 CDC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핵심요직에서만 17년째 일하고 있는 그를 일요일이었던 지난 21일 프놈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1시간 30분 내내 열정적인 대답을 내놓으면서 캄보디아 경제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한국기업의 투자를 요청했다.

>> 캄코모터의 현지 조립 공장의 의미는?
“이번 프로젝트는 하나의 상징이다. 다른 외국인 직접투자(FDI)와는 다르다. 처음으로 자동차 산업에 투자한 경우다. 지금까지 부동산이나 의류업에 투자한 한국인들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캄코모터는 그런 첫 결실이다.”

>> 당신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큰 지지자가 되어줬다고 들었다. 왜 그랬나?
“캄코모터는 캄보디아가 원하는 제조업 투자다. 우리는 의류를 넘어 좀 더 발전된 생산시설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이 프로젝트의 지지자가 된 이유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더 많은 한국기업이 캄보디아에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훈센 총리에게 보고했을 때 총리는 바로 ‘시작하자(let’s go)’고 말했다.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

>> 한국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고 있었다. 캄보디아가 한국기업에 대안이 될 수 있나?
“물론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될 준비가 돼 있다. 우선 캄보디아는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이것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역사적으로 외국인, 특히 투자자에게 아주 호의적(friendly)이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는 이미 개방경제를 시작했고, 외국인들도 캄보디아에서 100% 자기 소유의 기업을 가질 수 있다. 또 5억 명 이상의 아세안이라는 큰 시장으로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40% 이상의 부품만 아세안에서 조달하면 역내수출에는 관세가 없다. 저렴한 인건비는 어느 지역과 경쟁해도 자신 있다.”

>> 공장을 유치하려면 싼 임금 못지않게 질 높은 노동력이 중요하다.
“솔직히 말하겠다. 캄보디아는 의류를 제외하곤 생산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다른 공장을 설립하면 초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금방 숙련된다. 9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의류공장도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민간기업에 다닐 때 여러 회사 사장으로부터 캄보디아 사람들을 좀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경영자가 제대로 훈련시키면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 어떤 기업이 투자했으면 좋겠는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농업(식품) 관련 산업이다. 금융인이든, 첨단 IT업 종사자든 누구나 세 끼는 먹는다. 우리에겐 아직 개간되지 않은 많은 비옥한 땅이 있다. 또 하나는 전자든, 자동차든 어떤 산업이든 간에 조립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삼성이나 마쓰시타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TV세트에 들어가는 1000개의 부품 중 한두 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공급하고 싶다. 캄보디아는 충분한 노동력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이 있다.”

>> 캄코모터의 성공이 캄보디아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나?
“무엇보다 한국기업들에 캄보디아가 투자할 만한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길 원한다. 사실 우리 정부는 캄코모터에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관세와 세제상의 혜택을 줬다. 이는 캄코모터가 좋은 차를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캄보디아 국민에게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캄코모터가 성공하면 우리 국민은 기술을 전수받고 초보적인 부품산업도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혹시 다른 한국기업이 캄보디아에 와서 캄코모터와 같은 혜택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건가?
“(웃으며) 지금으로서는 뭐라 답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어떤 투자자든 환영한다. 우리는 어떤 투자자의 상담도 환영하고 충분히 협의할 것이다. 특히 캄코모터처럼 미개척 분야에 개척자(pioneer)로 들어온다면 충분한 인센티브를 줄 용의가 있다.”

프놈펜·코콩=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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