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헌법 정신은 '마그나 카르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948년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은 13세기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 를 비롯, 17세기 권리청원과 권리장전 등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의 주요 인권헌장에 그 기본정신을 두고 있음을 알려주는 문건이 16일 처음 공개됐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일보가 제헌절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헌법제정의 핵심 산파역이었던 유진오 (兪鎭午.1906~87) 박사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처음 언론에 밝혀진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유품은 兪박사의 비망록과 6.25때 분실된 당시 국회속기록.사진등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헌법은 20세기초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과 1946년의 '신일본 헌법' 등을 참고했다고만 알려져왔을 뿐 기본권 보장의 최고 전범 (典範) 인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을 기조로 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兪박사는 당시 헌법초안 작성에 앞서 먼저 마그나 카르타의 기본정신을 이해한 다음 이를 개념화해 우리 것으로 소화하려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헌법초안 작성 당시 유품중 마그나 카르타 (1215년).권리청원 (1628년).권리장전 (1689년) 등의 발췌본에는 '확실한 권리와 자유…' '의회의 승인 없이…' 등 주요 대목마다 꼼꼼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어 이들 인권헌장에 대한 그의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인간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마그나 카르타의 기본정신을 우리 헌법에 담아내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헌장은 한결같이 '법에 의한 권력의 행사' 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왕의 권력은 법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 역시 법에 의해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서문과 63개항으로 제정된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내란의 위협에 직면해 반포한 인권헌장으로 당시보다 후세인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 연방헌법이 표방하고 있는 기본이념과 정신도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그나 카르타 (제39조) 와 권리청원 등에는 "모든 자유민은 동등한 자격을 갖는 사람들의 법률적 판단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구속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는다" 고 명시돼 있다.

우리 헌법은 그동안 일본헌법에서 형식을, 바이마르 헌법에서 내용을 각각 참고했고 프랑스 제4공화국과 미 연방헌법 등을 참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을 뿐 정설이 없었다.

지난달 26일 열린 한국공법학회 주최 학술세미나에서도 "우리 헌법은 당초 어떤 모델을 참고로 제정됐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됐으나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었다.

헌법학자 한상범 (韓相範.동국대) 교수는 "당시 兪박사가 영국의 인권헌장들까지 참고한 것은 우리 헌법에도 '법에 의한 지배' 라는 입헌주의 정신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던 것 같다" 고 전제하고 "권력자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이념이 헌법 밑바닥에 깔리게 된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일 것" 이라고 분석했다.

이동현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