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정보소극장,'비언소'15일 막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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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후덥지근, 장마비 내리는 바깥과 달리 지하 연극무대는 에어콘 바람 서늘한 초가을. 무대는 신문지로 도배된 남자 공중화장실 네 칸. 객석에서는 반바지 반팔 차림의 민머리 사내가 힘있는 목청으로 무대지시를 내린다.

"음악, 큐!" 97년 봄부터 꼬박 한 해 동안 문성근.여균동 등과 영화 '죽이는 이야기' 시나리오에 묶여있던 이상우가 바로 이 사람. 그가 다시 대학로관객과 만나는 작품은 자작희곡 '비언소 (蜚言所)' .박광정 연출로 초연된 96년 당시 세 군데 무대를 옮겨다니면서 관객몰이를 했던 풍자극이다.

직접 연출까지 맡은 이번 무대는 "초연당시와 20%쯤 달라졌다" 는 자평. 스무 개 가량의 삽화를 연결하는 음악이 초연때의 대중가요에서 이번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풍으로 바뀌었고, 시의성을 고려해 대사도 일부 바뀌었다.

다섯 명의 배우가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며 들락거리는 화장실 칸칸은 연극적 재미를 만끽할 무대로 손색이 없다.

새치기 소동.물건 크기 자랑 같은 화장실 본연의 소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순 쇼무대나 남북회담장이 화장실안에 차려지기도 한다.

수시로 배역을 바꾸는 다섯 배우가 '맨 인 블랙' 차림으로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 오가는 동선 (動線) 을 몸에 익히는 동안, 때이른 구경꾼들은 종종 웃음을 터뜨린다.

그 때는 '칠수와 만수' 이래로 이상우의 희곡이 보여준 사회적 풍자의 시선이 제 맛을 내는 순간이다.

"난 욕심없습니다. 그저 늘그막에 살 시골집이나 있으면 됩니다.

앉으면 자연이 보이는 집 말입니다. 왔다갔다 할 승용차 한 대 하구요. 그리구 내가 오디오광이에요. 좋은 오디오는 하나 있어야겠단 말입니다.

그러다 그냥 작품이나 하면서, 아, 저요? 연극협회 이사입니다. " 볼일을 마친 뒤 물건을 털면서 늘어놓는 한 사내의 대사는 '비언소' 가 겨냥하는 풍자의 과녁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사회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웃음이지만,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풍자의 현재성을 만끽하기에는 남북관계 관련 대목이 다소 빛바랜 신문 느낌인 것도 아쉽다.

15일 개막. 8월30일까지 정보소극장. 02 - 762 - 0010.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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