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가던 강남호 갑자기 항로 변경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신호탄이었던 북한의 강남호가 돌연 항로를 바꿨다. AP통신은 지난달 30일 익명의 미국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강남호가 항로를 변경해 왔던 뱃길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 선박에 대한 검색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1일 “미국은 강남호의 목적지를 미얀마로 상정하고 미얀마 정부와 검색을 위한 협조체제를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강남호가 항로를 바꿈에 따라 검색을 위한 작전도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인근을 항해 중인 강남호의 항로 변경은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남포항을 출발한 강남호가 연료와 식량 등을 중간 공급받기 위해서라도 싱가포르나 베트남·미얀마 항구에 정박할 것으로 관측돼 왔다. 그런데 싱가포르나 베트남을 이미 통과한 강남호가 미얀마를 목전에 두고 항로를 바꾼 것이다. 그런 만큼 강남호의 항로 변경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제재, 특히 선박 검색에 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북한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북한 입장에선 의심 물품이 없더라도 검색에 응할 경우 유엔 결의안 1874호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미얀마 정부가 김석철 대사를 소환해 검색 계획을 통보하자 뱃머리를 돌렸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면서도 혼선을 주기 위한 뱃길 변경이란 지적도 나온다. 항로를 변경함으로써 긴장의 수위를 유지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정보 판단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이란 얘기다. 국책 연구기관의 북한 전문가는 “지난달 12일 유엔 제재 결의안이 발효한 직후 남포항을 출발한 강남호에 무기를 실었겠느냐”며 “선박 검색과 대북 제재 의지를 시험하고 혼선을 야기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감시망이 강화되는 분위기를 역이용해 무기를 실제로 수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기 이전에 수출하기로 계약된 무기를 선적했거나 감시망이 총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마 수출을 하겠느냐는 상식적 판단의 허점을 이용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대북 제재 전담팀을 구성하고, 골드버그 대북 제재 전담관을 중국에 파견하는 등 강력한 대북 제재 의지가 표면화하자 무기 수출을 포기하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검색이 실시돼 무기가 발견될 경우 제재의 명분을 더할 수 있기에 사전에 퇴로를 만드는 것이란 분석이다.

관건은 연료와 물·식량 등을 중간에 공급받지 않고 강남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다. 정보 당국자는 “강남호는 미국의 추적을 받은 이후 항해 경제속도인 10노트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연료를 절약하려는 의도이지만 2080t급인 강남호가 남포항까지 되돌아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