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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세계화 생각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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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우리말 연구의 선각자이신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른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쓰는 말 속에는 역사가 흐르고 문화가 살아 숨쉬기 때문에 말과 문화, 그리고 국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뜻이다.

요즘 우리말이 세계 속으로 넓게 넓게 번져 가고 있다. 이를 한국어의 세계화라 한다. 한국 문화가 외국에 널리 퍼져 한류라는 현상을 낳아, 그 영향으로 세계인들은 한국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세계인들은 한국어 학습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우리말은 세계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중앙일보는 1일자 E4면 ‘대한항공, 러 박물관 서비스 협약’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항공 주선으로 6월 말부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한국어 안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박물관은 러시아 문화를 넘어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라 불리는 곳이라서 더욱더 뜻 깊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2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한국어 안내를 시작했으며, 올 연말에는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서도 한국어 안내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세계 3대 박물관에서 모두 한국어로 작품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문화적인 노력은 한국어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크나큰 뜻을 지닌다. 세계 문화의 중심에서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한국의 언어,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의 국격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곳을 찾아 관람하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고 정확하게 세계 문화에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며, 현지 교민들에게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항공의 문화적인 노력은 자랑할 만하다.

정부는 최근 한국어와 한글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계획인 ‘세종사업’을 마련한 바 있다. 그 가운데 한국어와 한글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 한국어가 국제사회의 주요 언어로 사용될 수 있도록 외교적·문화적 역량을 집중하는 사업으로, 외국 유명 박물관·미술관·관광지 등에 한국어로 된 안내서와 설명서를 제작하여 지원하는 사업도 포함하고 있다. 이 사업은 바로 지금 대한항공이 펼치는 사업과 일치하고 있다. 이제 민간과 정부가 함께 힘써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세계 속으로 펼쳐 우리나라를 세계의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해야 할 것이다.

권재일 국립국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