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역전드라마…아찔한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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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끝장이 났구나. " 18번홀에서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종일 시원스럽게만 날아가던 박세리의 드라이브샷이 마지막 순간, 그토록 중요한 순간에 왼쪽으로 휘자 모두 절망에 빠졌다.

공은 페어웨이 위를 구르다 워터 해저드 주변의 무성한 풀밭 사이로 사라졌다.

다행히 물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상황은 별로 나을 게 없었다.

거의 수직 경사지 잡초 위에 공은 떨어져 있었다.

가망은 없어보였다.

정상적으로는 벌타를 감수하고 드롭을 해야 했다.

무리하게 공을 쳐내다 실수를 범하면 상황은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세리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떤 형태든 이 홀에서의 실패는 곧 패배를 의미했다.

박세리는 공이 놓인 곳 위의 페어웨이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장고를 계속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제니 슈아시리폰의 표정엔 여유가 흘렀다.

일찌감치 페어웨이 우측 1백89야드 지점에서 세컨드샷을 친 후 과자까지 먹으며 느긋하게 경기를 즐겼다.

비록 공은 그린 위에 오르지 못했으나 어떤 경우라도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박세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캐디 제프 케이블과 수차례 의논을 계속하던 그는 드디어 신발끈을 풀고 물속에 들어갔다.

야구 배팅을 하듯 거의 수평으로 휘두른 A웨지샷은 페어웨이를 넘어 반대편 러프로 떨어졌다.

박세리는 이곳에서의 세번째 아이언샷을 홀컵 5m에 붙였다.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박세리가 보인 의외의 투혼에 슈아시리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홀컵에서 불과 10여m도 안되는 거리에서의 칩샷은 홀컵을 지나 3m나 떨어진 곳까지 굴러갔다.

그리고 이 퍼팅도 홀컵에 빠질 듯 왼쪽으로 스쳐지나가 결국 보기가 됐다.

이것으로 박세리의 위기상황은 끝났다.

그리고 11번홀에서 벌어진 서든데스 두번째홀 경기. 두사람의 세컨드샷은 거의 비슷한 거리에 떨어졌다.

슈아시리폰은 6m, 박세리는 5.5m.이제 상황은 박세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슈아시리폰의 공은 그린의 굴곡을 넘어 내리막으로 치닫는 어려운 위치였다.반면 박세리의 퍼팅 라이는 굴곡이 없이 평탄했다.

버디퍼팅이 실패하자 박세리는 퍼터를 고쳐잡았다.마침내 다가온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신중한 그녀의 퍼팅은 그린 위를 굴러 정확히 홀컵을 향해 굴러갔다.버디성공. 박세리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5시간여에 걸쳐 벌어졌던 US여자오픈 사상 가장 치열했던 연장전이 끝난 것이다.

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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