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 스토리]장은증권 직원끼리 쓱싹 명퇴금 돈잔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일 밤 여의도 장은증권 사장실. 이대림 (李大林) 사장과 노조대표 (위원장 박강우) 들의 고성이 오갔다. 사장실 밖에서는 직원들이 24시간째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어차피 회사는 망한다. 우리는 사표까지 다 썼다.

마지막이니 명예퇴직에 사인해 달라. 회사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노조원)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회사가 부실해져 문을 닫을 판에 무슨 명예퇴직인가. 정상퇴직금만 받도록 하자. " (李사장)

자정이 넘어가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李사장에 따르면 노조는 명예퇴직에 사인하지 않으면 전산망을 마비시키겠다고 하는가 하면 직원 모금으로 '장기신용은행의 신용상태가 불량하다' 는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해 주주에게 피해를 주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결국 李사장은 설득을 포기하고 새벽녘 명예퇴직에 사인을 해주고 말았다.

3일 장은증권은 4백17명의 직원 전원을 사직처리하면서 정상퇴직금에다 1년치의 위로금을 얹어줬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지급한 퇴직금은 명예퇴직금 1백60억원을 포함해 모두 2백7억원. 그리고는 1백여명을 회사가 정리될 때까지의 업무처리를 위해 계약직으로 재고용했다.

오후에는 증권감독원에 스스로 업무를 중단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저녁식사를 마친 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에게 보고됐다.

임시금감위를 소집할 겨를이 없자 李위원장은 직권으로 업무정지명령을 내렸다.

李위원장은 또 직원들을 명예퇴직 처리한 경위를 조사하라고 지시한데 이어 李사장에 대해서는 출국정지를 당국에 요청했다.

李위원장은 회사가 자금압박에 쪼들리고 있는데도 전직원에게 명예퇴직금을 지급한 것은 최고경영자인 李사장의 배임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위는 이와 별도로 명예퇴직을 요구한 직원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방침이다.

빠른 시일내에 고객예탁금을 돌려주고 질서정연하게 회사를 정리해야 할 직원들이 거꾸로 앞장서서 회삿돈을 먼저 빼돌렸기 때문이다.

李위원장은 "장은증권은 우리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직업윤리 수준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 라며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을 것" 이라고 말했다.

여론의 비판도 거세게 일어났다. 5개 퇴출은행 직원들의 업무방해에 이은 또다른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다.

전직 시중은행장 Y씨는 "퇴출에 직면해서도 마지막까지 신용질서를 지켜야 할 금융기관 직원들이 먼저 흐트러지는 자세를 보여 유감스럽다" 고 말했다.

대주주인 장기신용은행도 즉각 직원들을 상대로 퇴직금 반환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나섰다.

장기신용은행 관계자는 "회사가 빈사상태에 빠졌는데도 명예퇴직금을 불법적으로 과다하게 지급했기 때문에 대주주로서 이를 원상복구하기 위한 소송을 준비중" 이라고 밝혔다.

장은증권은 지난달말 편법증자 사실이 증권감독원에 적발되면서 영업용 순자산비율이 최저기준인 1백%에 훨씬 못미치는 16%대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또 장기신용은행도 더이상 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데다 지난 1일부터 고객예탁금 인출사태가 벌어져 직원들도 폐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왔다.

한편 노조측은 "명예퇴직은 노사합의에 따른 것이며 결정 과정에서 李사장에 대한 강압이나 협박은 일절 없었다" 고 밝혔다.

남윤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