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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건강철학 전도사' 김일순 연세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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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건강에도 철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거창한 건강비법이나 첨단의료보다 몇 가지 간단한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란 것이다.

최근 국민건강증진연구소를 개설, 독특한 건강철학의 전파에 힘을 쏟고 있는 전 연세대 의무부총장 김일순 (金馹舜.62) 교수의 지론이다.

- 건강에도 철학이 있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심오한 철학을 지녀야 오래 산다는 겁니까.

"내가 말하는 건강철학은 먼저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1백조 개에 이르는 인체세포는 대뇌 깊숙이 위치한 시상하부 (視床下部) 란 곳을 통해 마음을 관장하는 대뇌피질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인체구조 자체가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선 결코 육체의 건강을 기대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건강도 구조조정을 해야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건강에 대한 인식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잘먹고 잘살게 됐음에도 오히려 암과 같은 성인병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우선 내가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남을 사랑하고 위해야 합니다.

최근 미 국립과학회지 (PNAS) 는 암수 불문하고 새끼를 양육하는 성 (性) 이 더 오래 산다는 흥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컷이 새끼를 기르면 수컷이, 암컷이 새끼를 기르면 암컷이 장수한다는 것이지요. 살기 어려워졌다고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팽개치는 요즘 세태는 스스로의 생명을 단축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 이타심이 좋긴 합니다만 그러다간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습니까.

"대체 진정한 성공이 뭡니까. 출세와 축재에 아등바등하다가 제명에 못살고 병을 얻어 죽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진정한 건강과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다져나가야 합니다. "

- 잘 살게 된 것이 오히려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절제가 건강의 첫번째 조건입니다.

못 먹어 걸린 병은 다시 먹으면 낫지만 많이 먹어 걸린 병은 화타가 와도 못 고칩니다.

당뇨병이 좋은 사례입니다. 우리나라 당뇨환자는 주로 50, 60년대 못 먹고 자라던 세대가 7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의 풍요를 맛보면서 급작스런 영양 과잉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흘러넘치는 혈당을 췌장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 것이지요. "

- 그렇다면 최근의 IMF 경제위기가 한국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겁니까.

"물론이죠. 건강은 외제 검진장비나 값비싼 보약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철학과 생활습관의 문제입니다.

절약과 내핍이 강조되는 IMF는 오히려 우리 국민들이 건강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 건강에 중요한 생활습관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공자말씀 같지만 균형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지요. 다만 여기에도 절제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평범한 식단으로 짜인 이른바 소식 (素食) 이 건강에 제일이고 운동은 장소에 상관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

- 술.담배는 얼마나 나쁜 겁니까. 지난 88년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직접 만들어 금연운동에 앞장서 오지 않았습니까.

"술이야 적당히 마시면 괜찮지만 담배는 정말 백해무익이에요. 약봉지 들고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정말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흡연은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흡연율은 세계 최고수준 아닙니까. 특히 청소년들의 흡연은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법률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만18세 이하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하는 청소년보호법이나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은 정말 손색없는 제도지요.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키지도 않는 법이 무슨 소용입니까. "

- 담뱃값을 올리면 실제 금연효과가 있을까요.

"담뱃값을 10% 올리면 흡연율이 4%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문제는 국내 담뱃값이 세계 최저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갑에 1천5백원에서 2천원은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담뱃값 인상은 흡연인구의 감소는 물론 정부의 세수증대와 담배회사의 이익증대까지 가져오므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요. "

- 건강은 정자와 난자가 만날 때 이미 일생의 건강이 결정된다는 운명론도 있는데요. 예컨대 골초 중에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소수의 예를 갖고 전체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건강은 확실히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가꿔 나가느냐가 타고난 건강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타고난 건강에 대해선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 연세대 보건대학원과 과천시가 합동으로 벌이는 건강도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데, 무얼 하는 겁니까.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됐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겁니다.

올해 과천시로부터 1억2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시민들의 건강수준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건강도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과천 시민들이 어떤 병을 앓고 있으며 건강상태는 어떠한지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흡연청소년들의 금연교육과 여성건강교육을 과천시내 보건소에서 실시중이며 비만클리닉도 설치했습니다.

올 가을엔 장수건강걷기대회를, 내년엔 어린이들의 근시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수년후 현재 과천 시민들의 건강수준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일 생각입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좋습니다. 일본에서도 20개 도시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단체가 연계한 건강도시사업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여성 유권자들의 눈을 의식해 유방암 연구비 지원에 인색하면 낙선한다는 것이 불문율로 돼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유권자들도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건강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투표권을 행사해야겠습니다."

- 인간은 과연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앞으로 50년 후면 교통사고와 유전성 질환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1백세까지 사는 것은 무난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의 개선과 올바른 건강철학의 확립으로 각종 성인병 발생률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오래만 살면 무얼합니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할 것 아닙니까.

"물론이죠. 절제된 생활철학을 지켜나가기만 한다면 오래 살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첨단의학의 급속한 발달로 노인들의 삶의 질은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아무리 길어져도 나쁜 생활습관과 대충대충 사는 사람들은 몹쓸 병에 걸려 더욱 빨리 죽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런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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