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무책임한 정치권 … 예견된 ‘대량 해고’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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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右)과 한승수 총리가 30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만나 비정규직 법안 처리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총리는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당부하기 위해 국회의장, 한나라당 대표, 자유선진당 총재를 차례로 예방했다. [김형수 기자]

정규직 전환이냐 해고냐-. 비정규직 근로자가 기로에 섰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할 기업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대량 해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이런 사태는 2년 전 법을 시행할 때부터 예견됐다. 하지만 2년여 동안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비정규직 보호법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이후 매년 비정규직이 80만 명씩 늘었다. 2001년 180만 명으로 급증하더니 2004년에는 360만 명에 달했다. 당시 이들의 임금은 월평균 116만원으로 정규직의 62.6% 수준이었다.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서 보호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2년여 동안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정부는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토대로 2004년 11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에게는 같은 임금을 주고 ▶3년간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이 골자였다.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반발했다. 열린우리당은 2006년 11월 고용기간 제한을 2년으로 줄인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통과시켰다. 2007년 7월 1일 ‘고용 기간 2년 제한’ 시한폭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와 경영계에선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은 “비정규직법은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부담이 커지고,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수백 명이 법 시행 직후 계약해지됐다.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에 외주로 돌리려는 시도였다. 2007년 7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기간 제한 2년은 너무 짧다.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법을 고치기보다 “기업의 편법이나 탈법 여부를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며 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압박했다. 그런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자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있던 한국노총의 반발을 의식해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

올 들어 시한이 다가오자 한나라당과 정부가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법률 개정안조차 만들지 못했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자 무기력으로 일관했다. 노동부가 고용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4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됐다. 6월 시한폭탄이 폭발 직전에 처하자 한나라당은 부랴부랴 ‘2~3년 유예안’을 제시하며 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너무 시일이 촉박했고 결국 시한폭탄은 폭발했다.

비정규직 보호라는 뜻은 좋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고용 기간을 제한하면 기업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좋은 측면만 봤다. 하지만 2년이 끝나면 해고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엔 눈을 감았다. 정부도, 정치권도, 노동계도 같았다. 경영계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만 접근했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김기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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