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여름방학 아이와 웃으며 보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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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숙(35·서울 도봉구)씨는 최근 들어 예민해진 딸 남수현(서울 월촌초 4)양과 방학 내내 씨름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윤씨는 “그동안은 사이 좋게 방학을 보냈는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번엔 잔소리를 하게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비단 윤씨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학이 되면 하루 종일 자녀와 함께 있어야 하는 전업주부나 아이 맡길 곳이 필요한 워킹맘이나 모두 스트레스가 많다. 해결책이 없을까. 교육 전문가들은 엄마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방학 내내 늦잠 자고 계획적이지 못해요”

초등 5학년 남자아이를 둔 주부 문경희(40·서울 강서구)씨. 방학이 되면 지난 겨울방학의 악몽이 떠오른다. 아이가 밤늦도록 TV를 보느라 오전 10시가 넘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어르고 혼내도 봤지만 소용 없었다. 늦게 일어나니 하루 일과가 엉망진창이 됐다. 문씨는 “1학년 때부터 방학 습관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 그런 것 같다”며 후회했다.

몇 시에 일어나 몇 시간 영어 공부를 하고, 몇 시에 자고…. 자녀가 지켜야 할 일과 시간을 정해두면 엄마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계획대로 지키는 아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집중력센터 이명경 소장은 “방학에는 특히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과 자유롭게 해도 되는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상과 취침,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시간은 꼭 지킨다. 가급적이면 학기 중과 같은 것이 좋다.

이것이 힘들다면 반드시 지킬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만 몇 가지를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컨대 아침 식사는 오전 8시에 먹고, 컴퓨터는 밤 12시 이후에 하지 않기 정도는 반드시 지키도록 정한다. 단 어겼을 때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이를 자녀와 미리 상의해 ‘각서’를 받아두면 효과적이다. 잘못을 반복할 경우나 하지 않도록 정해진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벌을 받을지, 잘했을 때는 어떤 상을 받을지 문서로 작성해 각자 사인도 해두면 약속을 잘 지키게 된다.

방학 시간표는 시간 위주보다는 과제 중심으로 짜는 것이 좋다. 매일 줄넘기 50번 하기, 수학 20문제 풀기 식이다. 이 소장은 “대신 책 읽기 같은 활동은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하루 종일 게임에 빠져 있어요”

김형미(38·성남시 분당구)씨는 초등 3·4학년 형제 때문에 골치다. 게임을 좋아하는 두 아이는 방학만 되면 중독 수준으로 게임을 한다. 김씨가 잠자리에 든 후에는 몇 시까지 더 하고 자는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만 하라’고 소리쳐 봐도 아이들은 마이동풍, 잔소리로밖에 듣지 않는다. 게임을 못하게 하려고 외국으로 한 달 동안 캠프를 보낸다는 지인의 말에 김씨도 망설이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일단 게임을 접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한 방법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이나 친척 집에 보내는 것. 친척들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다 보면 자연히 게임 생각을 떨칠 수 있다. 아이 옆에서 게임 단속을 할 수 없는 워킹맘에게는 꼭 필요한 방법이다. 하지만 아이 의사와 상관없이 억지로 보냈다가는 역효과만 날 수 있다. 또 가정에 따라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아이와 집 밖으로 함께 나가는 일을 자주 만든다. 집 안에서는 아무래도 게임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체험학습이나 여행, 운동경기장 등을 다니는 것도 좋다.

게임을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보다 ‘욕구’를 조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고영삼 소장은 “아이와 시간 약속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인터넷을 이용하는 대신 공부도 얼마 동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는 것. 정해진 시간에만 게임을 즐기도록 하거나 컴퓨터 옆에 알람 시계를 놓고 스스로 끄도록 훈련시키거나 뭔가 과제를 다한 후 보상 차원에서 게임을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게임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지 작성’을 병행하는 것도 좋다. 매일 컴퓨터를 켠 시각과 끈 시각을 기록하면 자신의 게임 습관을 파악할 수 있고, 스스로 게임 습관을 고쳐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게 돼요”

방송이(36·서울 서초구)씨는 6학년 딸아이와 고학년이 된 후 방학 때마다 자주 부딪친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는데 딸아인 학원도 안 가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방씨가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올 줄 모른다.

방학 동안 아이와 잘 지내기 위해 엄마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 비우기다. 어른도 휴일이나 휴가를 받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방학이 되면 늦잠도 자고 싶고 컴퓨터 게임도 실컷 해보고 싶다. 친구들과도 원 없이 놀고 싶다. 아이들의 눈높이와 맞춰야 할 시점이다. 공부 계획을 너무 꽉 채워 세우지 말고, 지나치게 모범적으로 생활하도록 요구해서도 안 된다.

부모 교육 전문가 이민정씨는 “엄마가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 그 긴장감이 자녀에게도 전달돼 신경질적이 되고 불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예 아이와 만나게 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에 엄마는 문화 강좌를 듣거나 취미활동을 한다. 이씨는 “하루 2시간 이상 엄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방학을 이용해 아빠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는 것도 방법.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꼭 인사를 하게 하거나 저녁 식사 후에는 함께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주말에는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하면 엄마는 쉴 수 있고 아빠와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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