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박찬범씨 풀피리 9월 첫 독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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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계 각국의 민속악기는 그 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다.

조개껍질.코코넛 껍질로 만든 나팔, 뱀의 껍질로 만든 북, 대나무로 만든 피리와 실로폰…. 풀잎을 입에 물고 부는 풀피리도 자연의 소산이다.

풀피리라고 해서 보리피리나 버들피리 쯤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초금 (草琴) 또는 초적 (草笛) 이라고 하는 풀피리는 조선시대 궁중음악 이론서인 '악학궤범 (樂學軌範)' 에도 그림과 함께 소개된 향악기의 일종. 귤.유자.갈대잎을 말아 풀피리를 만드는데 호흡의 세기를 조절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치아 사이로 혀끝을 흔들어 음을 떤다고 소개돼 있다.

궁중음악에서 단절된 초적의 전통은 민간으로 전승돼 오다 1940년대 강춘섭 명인의 녹음이 SP판에 담겨져 있을 뿐 명맥이 거의 끊어지고 없다.

지난해 세계피리축제에 한국대표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박찬범 (朴燦凡.50) 씨가 오는 9월7일 정동극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풀피리 독주회를 갖는다.

8살때부터 나뭇군 출신인 부친에게 풀피리를 배운 그는 18세때 상경해 지난해까지 건축업에 종사하다 최근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화분에 있는 잎을 따서 즉석에서 '강산풍월' 을 연주해 보였다.

"풀피리가 무슨 악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처럼 비가 올때 소리가 잘 나지요. 어릴 땐 비 올 때 피리 불면 귀신나온다고 야단도 많이 맞았어요. 또 모진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낸 사철나무 잎이 질기지만 우렁한 소리를 냅니다. "

풀피리에는 초근목피 (草根木皮) 로 겨우 연명하던 어려운 시절에도 삶의 여유를 잃지 않았던 민초 (民草) 들의 한 (恨) 이 담겨 있는 듯하다.

9월 공연에서 朴씨의 '초금 시나위' '군밤타령' '강산풍월' 연주에 이어 이원영 (26) 씨가 풀피리 반주로 살풀이춤을 선보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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