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시장 첫 출근길 전철서 퇴출은행 직원만나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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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일 오전8시 고건 (高建) 새 서울시장의 첫 출근길. 중첩 (重疊) 한 어려움이 기다리는 답답한 현실 처럼 굵은 장마비가 내리고 있었다.

'민선시장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키로 한 高시장은 집 부근의 4호선 혜화역으로 향하며 "시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시정을 잘 이끌겠다" 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부터 高시장의 '시련' 은 시작됐다.

전동차안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벼 손수건으로 연신 땀만 닦아야 했다.

高시장의 본격적인 곤욕은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 전동차로 갈아탄 다음 기다리고 있었다.

高시장은 문옆 빈 자리 남녀 사이에 끼어 앉았고 그런대로 승객들과 대화를 나눌만 했다.

高시장은 먼저 왼쪽의 30대 남성과 인사를 마치고 다시 오른쪽에 앉은 20대 여성에게 "어디까지 가시느냐" "어느 직장에 다니시느냐" 고 말을 걸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이 여자승객은 마지못해 "동화은행에 다니는데 퇴출됐습니다. 지금 명동성당으로 농성을 하러 가는 중입니다" 는 전혀 예기치 못한 대답을 내뱉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동화은행 서울 압구정 지점에 근무했다는 許모 (27) 씨의 이 말이 떨어지자 高시장의 얼굴에는 당혹스런 빛이 스쳐갔다.

잠시 뒤 평상심을 되찾은 高시장은 "앞으로 전문직.사무직 실직자들을 위해 시의 정보화사업을 적극 추진하려 하는데 그러면 동료들 중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 고 許씨를 위로했다.

이에대해 許씨는 "평생동안 은행일만 해온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며 다소 불만스럽게 말했다.

다시 머쓱해진 高시장은 다만 "모든 사람을 다 수용할 수야 없겠지만…" 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 사람은 새로 시장에 취임하러 가는 희망의 발길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직장이 문닫아 농성을 하러 가는 대조적인 만남. 이날 목격된 장면은 마치 새 시장앞에 놓여있는 험난한 전도 (前途) 를 상기시켜 주기위해 마련된 듯한 극적이고 상징적인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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