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장관이 정책홍보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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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홍보에 장관들이 나서라. " 오죽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지시까지 하랴마는 그래도 장관들의 부처 장악력에 점수를 매기겠다는 발상보다는 백번 낫다.

국민 앞에 나설 장관들은 걱정스럽겠지만 업무파악의 계기로 삼아 '장수 (長壽) 장관직' 을 보장받는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미국의 장관들은 공식업무 시작 전에 상원의 깐깐한 인준청문회를 거쳐야 하니 업무를 소상히 챙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시로 의회에 불려가 현안에 대한 공개 신문을 받는 것도 무시못할 부담이다.

주요 언론에 초청받아 (?) 전문가들의 빈정거림 속에 정책을 변호하는 일도 미국 장관이나 백악관 보좌관들 일상업무의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비하면 임명권자 한사람의 심기만 살피면 족했던 지난날 우리 장관들은 호강했던 편이다.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으로 청와대 보좌관도 언론을 탔다고 하니 대통령 곁의 고위관리를 통해 나라의 입장을 들을 기회도 종종 있게 될 모양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직후 미국식 정례 브리핑을 하겠다던 청와대 대변인의 큰소리에 혹시나 하고 기대해 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국정 홍보의 성패는 국민 앞에 선 이들이 맡은 일에 얼마나 정통한가에 달려 있다. 사태의 앞뒤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대변인 한사람의 입은 자칫 정책에 대한 신뢰를 해칠 우려마저 있다.

차라리 미국 백악관처럼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담당비서관이나 주무장관을 앞세워 충실한 설명을 하는 것이 정책홍보의 바른 길이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백악관은 안보.경제 보좌관들과 재무장관을 한데 모아 브리핑을 가졌다.

나라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정부의 냉철한 인식과 고뇌를 알리는 정책홍보야말로 어려운 정책선택에 국민들의 이해와 신뢰를 이끌어내는 국정운영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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