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자금 지원받아 식당 시작한 50대 부부 “그 돈이 세 식구 목숨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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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신천역 뒤편 먹자골목. 식당 서너 곳에 ‘임대 문의’가 붙어 있다. 이날 가게의 절반가량이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연 데도 손님이 한두 테이블밖에 없다. 20년째 설렁탕집을 하는 신모(60)씨는 “한 달에 두세 집이 문을 닫는다. 빈 가게가 많다”고 말했다. 횟집을 하는 김모(42·여)씨는 “손님이 너무 없다. 주말인데도 가족 손님이 안 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1인분에 3000원짜리인 값싼 음식점만 손님이 몰린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하강이 다소 진정된다고 하지만 자영업자에게나 구직자에게는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있지만 장사가 안 된다. 사람을 구하는 곳도 줄고 있다. 기업들이 5월 한 달간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구인 요청한 건수가 3월에 비해 8.6% 줄었다.

26일 오후 서울 남부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노영훈(50)씨는 “며칠 전 일식집 요리사 자리에서 해고됐다”며 “요새 일자리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휴·폐업했거나 실직한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나마 희망근로(25만4673명)와 일자리 나누기, 위기 가정 지원 등의 긴급 대책이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하면서 빈곤층 추락을 붙들고 있다. 경기 급락세가 멈칫하면서 자영업자 특례보증 신청자가 4월 581건으로 정점에 달했다가 지난달에는 429건으로 줄었다. 실업급여 신청자도 지난달 6개월 만에 처음 감소했다.

서울 구로 4동 김광기(54)씨 부부는 최근 소상공인 정책자금 3000만원을 지원받아 식당을 시작했다. 김씨 부인은 “살기가 힘들어 고통이 없다면 이대로 죽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3000만원이면 자살하려는 세 식구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들이 한시적인 게 많아 ‘한계 중산층’이 언제든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남부고용지원센터 권구형 소장은 “정부의 임시 일자리 때문에 실업급여 신청자가 준 것처럼 보일 뿐 실제 사정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위원은 “정부의 고용 유지 정책과 중산층 추락 방지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이라며 “그러나 희망근로가 재산담보 대출 수요를 빨아들이는 등 제도가 겹치고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사람이 크게 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안혜리·장정훈·김은하·강기헌·허진 기자 ins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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