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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원가 공개 최소화해도 건설업계는 심각한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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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뜨거웠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논쟁이 정부와 여당이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국민주택 규모에 한해 원가연동제와 병행.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함에 따라 일단락됐다. 그러나 아무리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원가공개라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기본이 되는 경제원리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주택업계가 원가를 공개할 수 없는 것은 주택업체가 폭리를 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원가공개가 시장경제에 역행하고 이로 인해 회사 경영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주택건설 사업지별 분양원가를 공개한다면 자연히 분양가격은 공개된 원가에 의해 결정되므로 시장이 아닌 타의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게 되면 경영혁신.기술개발.공정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 등 기업이 갖고 있는 노하우는 전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므로 알뜰하게 경영하는 회사와 방만한 경영을 하는 회사의 차이가 없어진다. 결국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둘째, 사업지별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 원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면 10개의 사업지 중 통상 3개 정도가 수익을 내고 4개가량은 본전, 나머지 3개는 손해를 보게 된다. 제조업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익을 내고 있는 모델 30% 정도가 나머지 70%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만약 사업지별 원가를 공개한다면 이익을 내고 있는 사업지의 고객은 당연히 불만을 나타낼 것이고, 결국 손해나는 사업지를 보전할 수 없으므로 지속적인 회사 경영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대부분의 기업은 종합적인 원가, 즉 모든 모델.사업지를 포함한 종합원가를 결산보고서에서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도 모델.사업지별 원가를 공개하는 기업은 없다. 모델.사업지별 원가는 회사의 일급비밀이고, 회사 내에서도 극소수 인원만 알고 있는 게 통상이다. 우리나라엔 약 6000개의 등록된 주택업체가 있지만 부동산.주택경기가 호황이었던 지난해에도 이익률이 10% 이상인 회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수익을 내지 못하고 부도난 업체가 1.07%에 달했다. 부동산과 주택경기는 일반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항상 호경기를 유지할 수 없으며 일반 경기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토지공사 등이 매각하는 공공택지가 건설회사에 항상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많은 건설회사가 공사비 조로 공공택지를 억지로 인수하고 이를 큰 폭으로 할인해 팔기도 했다.

지금의 호황은 일시적인 것이며, 현재 부동산 경기의 트렌드도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의 일시적 현상을 기초로 해 제도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끝으로 부동산과 주택값이 올라간 원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부동산, 특히 주택 중에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아파트값이 올라간 원인은 높은 분양가 때문이 아니고 다른 데 있다. 높은 분양가는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그 근본 원인은 공급 부족과 저금리 및 과잉 유동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가를 공개한다고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매우 감성적인 접근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이미 세계 주요 시장과 동조화됐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하에서 세계경제는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년여간의 주택가격 급등 및 부동산 경기 호황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과 독일을 제외한 미국.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호주.중국.인도.홍콩.태국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앞으로도 부동산.주택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금리 및 철근.석유 등 원자재값 변동에 따라 세계 주요 나라의 부동산.주택경기가 동조화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날 것이다. 국내 부동산 및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해결 방법도 글로벌 스탠더드와 시장경제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이방주 한국주택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