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펑의 재혼, 마오쩌둥 “아름다운 인연” 축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0호 33면

외교부 출범 직후 지인들과 이화원에 놀러간 궁펑과 저우언라이 부부(오른쪽 맨 뒤 저우언라이의 앞이 궁펑). 김명호 제공

1939년 3월 독일에 유학 중이던 차오관화(喬冠華)는 항일전에 참전하기 위해 귀국했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광저우(廣州)에 주둔하던 제7전구사령부의 참모로 초빙을 받았다. 서구의 군사정보와 국제관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올렸지만 읽는 사람이 없다 보니 칭찬이나 질책 받을 일이 없었다. 방구석에 앉아 쓸데없는 짓만 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19>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허망한 나날을 보내던 차오관화의 숨통을 터준 것은 일본이었다. 광저우가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7전구 참모본부는 차오를 홍콩에 파견해 신문을 만들게 했다. 유럽 전선과 스페인 내전을 분석한 글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은 옌안에서 차오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2개의 탱크사단보다 위력이 있다”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차오관화는 문화인들을 이끌고 홍콩을 탈출했다. 충칭(重慶)에 도착한 차오를 극작가 샤옌(夏衍)이 저우언라이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저우는 궁펑과 함께 이들을 만났다. 그날 밤 차오는 궁펑에 관해 아는 대로 얘기해 달라며 샤옌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얼마 전 남편이 사망했다’고 하자 안쓰러운 표정을 짓다가 “두 눈이 포도주 같더라”며 싱글벙글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우언라이를 만난 소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다음 날부터 궁펑의 집무실에 장미꽃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이 총명한 여인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1946년 난징과 상하이를 오가던 시절의 궁펑과 차오관화.

1943년 가을 두 사람은 결혼했다. 저우언라이 부부와 둥비우(董必武), 예젠잉(葉劍英), 린보취(林伯渠), 왕뤄페이(王若飛) 등이 붉은 비단에 서명한 면사포를 궁펑에게 씌워 주었다. 차오관화는 샤옌과 황먀오쯔(黃苗子)에게 빌린 돈으로 땅콩과 사탕을 구입해 하객들에게 대접했다. 둥비우는 이들 부부에게 자신의 방을 내줬다. 이듬해 여름 아들 쭝화이(宗淮)가 태어났다. 차오는 방마다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돌렸다. 일본이 항복한 후인 1945년 8월 장제스와 담판하기 위해 충칭에 온 마오쩌둥도 “아름다운 한 쌍의 제비, 천리를 날아와 인연을 맺고 혁명을 이끌었다”며 축시를 선사했다. 1947년 3월 8일 내전이 발발하자 중공 대표단은 옌안으로 철수했지만 궁펑과 차오관화는 홍콩으로 자리를 옮겨 신화사 홍콩지사를 설립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한 달 후인 1949년 11월 8일 오후 8시 외교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총리 저우언라이가 부장을 겸직했다. 궁펑은 정보국장에, 차오는 외교정책위원회 부주임 겸 신화사 홍콩지사 사장에 임명됐다. 궁펑은 10여 명의 간부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마오쩌둥은 “부뚜막을 바꿔라. 청소를 깨끗이 한 후에 손님을 청해라. 외교는 편파적이어야 한다”며 신중국 외교의 3대 방침을 천명했다. 저우언라이는 “싸우면서 연합할 방법을 모색하고, 연합한 상태에서 싸울 날을 대비하는 것이 외교”라며 “외교에는 사소한 것이 없다. 우왕좌왕하거나 충동적인 말과 행동은 금물”이라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이듬해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해 겨울 펑더화이(彭德懷)가 지휘하는 중국인민지원군은 압록강을 건넜다. 51년 6월 30일 연합군 사령관 리치웨이는 정전회담을 제의했다. 외교부 부부장 겸 군사위원회 정보부장 리커눙(李克農)과 차오관화는 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하기 위해 개성으로 떠났다. 상대가 미국이다 보니 하버드나 예일대학을 졸업한 정예요원과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200여 명이 두 사람을 보좌하기 위해 동행했다.

회담은 2년을 끌었다. 그 사이 저우언라이는 전선에서 첫 남편을 희생당한 경험이 있는 궁펑을 개성으로 장기간 출장 보냈다. 궁펑은 만삭으로 귀국하는 날 전송 나온 북한 대표 남일(南一)에게 아들이면 송악(松嶽), 딸이면 송도(松都)라는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말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