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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게임, 밥자리가 운명을 바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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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10면

진시황이 죽은 뒤 천하 패권을 두고 유방과 싸움을 벌이던 항우가 그를 유인해 죽이려고 했던 식사 자리 홍문연(鴻門宴)의 상상도. 항우의 암살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관중으로 도피한 유방이 뛰어난 전략을 앞세워 마침내 한(漢)왕실을 건립한다.

중국인들은 밥을 먹는 자리에 자못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다. 밥을 뜻하는 ‘반(飯)’이라는 글자에 국면을 뜻하는 ‘국(局)’이라는 글자를 합쳐 ‘반국(飯局)’이라고 하면 이게 중국인이 의미를 부여하는 밥자리가 된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모략2

반국의 ‘국’은 일종의 게임을 뜻한다. 원래 바둑이나 장기에서 나온 단어로, 서로 두는 바둑을 대국(對局)이라고 하거나 바둑판 위의 상황을 형국(形局)으로 얘기하는 경우를 참작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밥과 게임. 전혀 엉뚱한 개념일 수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버젓이 통하는 실생활 속의 단어다. 밥을 먹는 자리가 ‘게임’의 차원에까지 넓혀진다는 점, 모략이 중국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생활화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중국 역사에서는 밥자리가 중요한 사안의 향배를 결정하는 적이 많았다. 한 예가 송(宋) 나라를 세운 조광윤(趙匡胤)이 주도했던 밥자리의 이야기다. 왕조를 건립한 지 반 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조광윤은 근심에 빠졌다. 창업을 도왔던 여러 신하들이 지방에서 상당한 무력을 갖춘 채 실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 실력자들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 그렇다고 병력을 앞세워 이들을 치기에는 내란이 우려스럽다.

새 황제 조광윤이 밥자리를 만들어 신하들을 모은 뒤 술을 먹다가 울상을 짓는다. “왜 그러시느냐?”고 신하들이 묻자 “요즘 잠이 잘 오지를 않아”라고 대답하는 황제.

“물론, 자네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자네 부하들이 나서서 자기의 주인을 황제로 옹립하려 나설까 두려워서 그래.”
밥자리는 황제의 이 한마디로 공포 분위기가 된다. 왕조에서 가장 큰 죄목은 반역(叛逆)이다. 황제 자리를 탐낸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다. 그 가능성을 황제가 먼저 언급하고 나섰으니….

신하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황제 앞에 나타난다. 그러고서는 한결같이 “이제 나이가 들어 군사들을 지휘할 능력이 더 이상 없다”며 병권(兵權)을 황제에게 바친다.
군사력을 보유한 대신들을 반역의 공포로 몰아넣은 뒤 집단으로 병권을 반납하게 하는 조광윤의 계산성이 엿보이는 자리. ‘술 한 잔으로 병권을 풀게 했다’는 뜻의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는 성어에 얽힌 이야기다.

또 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에게는 유명한 세 명의 보디가드가 있었다. 이들은 각기 아주 위급한 순간에 경공을 구한 공로로 임금인 경공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교만해진 이들이 급기야 안하무인의 지경으로 변해 대신들에게 횡포를 일삼는 권력자로 변했다는 점.

지혜의 대명사격인 안자(晏子)가 나서 밥자리를 만든다. 왕과 자신, 세 명의 보디가드와 일부 대신들이 참석하는 자리였다. 안자는 경공에게 복숭아 두 개를 건네면서 세 사람에게 하사하도록 한다. 경공은 안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공로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복숭아를 먹으라”고 분부한다.

두 사람이 먼저 복숭아를 집었다. 나머지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내 공로가 더 크니 복숭아를 돌려 달라”는 것. 가만히 따져 봤던 먼저의 두 사람이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실제 공로를 따지자면 마지막 하나가 더 나을 수도 있지만 먹던 복숭아를 돌려주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무력은 뛰어났지만 머리가 부족했던 이 두 용사는 결국 검을 빼들어 자결한다. 마지막 하나도 친구들이 복숭아로 인해 죽는 모습을 보자 그 뒤를 따르고 만다.

안자의 꾀에 넘어간 이 어리석은 세 용사.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를 죽인다(二桃殺三士)’는 성어에 담긴 일화다. 역시 밥자리에서 벌어진 모략의 세계다.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벌인 홍문연(鴻門宴), 천하를 경략하려는 뜻이 유비(劉備)에게 있는지 의중을 떠봤던 조조(曹操)의 행위도 모두 밥자리에서 벌어졌다.

그래서 중국의 밥자리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모두 거창하다. 메뉴의 내용과 내오는 요리의 순서, 누가 먼저 젓가락을 요리에 대느냐, 식사 전에는 어떤 형식으로 자리를 잡는가 등이 모두 정해진다. 밥자리에서 벌어지는 ‘게임’이 중요한 만큼 그 형식이 복잡하게 발달했다.

생활에서도 중국인들은 밥자리를 통해 게임을 벌인다. 늘 상대의 의중을 먼저 짐작하고 그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 답을 마련한다. 비즈니스가 특히 그렇고, 중국인들이 펼치는 정치라는 것도 이런 ‘식탁 위의 대화’를 통해 펼쳐진다.

사람 사는 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식사다. 그 중요한 식사가 게임의 현장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오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주고받음이 결국 모략으로 정리된다. 단순히 잔꾀쯤으로 이 모략의 세계를 넘겨 버린다면, 중국인을 이해하는 수준은 크게 낮아진다. 모략은 중국인 생활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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