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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숨어있던 우리차 이야기 모아놓으니 한 보따리 풀어놓으니 한 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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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0면

 한국의 차 문화 천년 1, 2
송재소 외 옮김, 돌베개
328.408쪽
각권 2만원.2만2000원

‘야다시(夜茶時)’란 말이 있다. 조선시대 사헌부 감찰들이 밤중에 긴급히 모이는 일을 가리킨다. 본래 부정한 짓을 한 관료가 있으면 감찰들이 밤중에 모여 그 사람의 집 문에 죄악을 쓴 판자를 걸고 금고에 처해 사회적 매장을 시켰다. 그런 모임을 야다시라 일렀는데 나중에 잠깐 사이에 남을 때려잡는다는 뜻으로 변질됐다고 한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람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데 이것이 고려 시대 이래 감찰 관료들이 모여 차나 한잔 마시고 헤어지는 ‘다시(茶時)’에서 비롯됐다고 적었다.

여기서 옛 관리들이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나 티 타임(tea time) 같은 것을 즐겼음을 엿볼 수 있다.

“금잔디 고우니 비단 자리 필요 없고 / 한 잔 술에 흥그러우니 신선도 안 부러워 (…) 차 달여 손을 대접함도 맑은 운치이니 / 바라보매 저편 숲에 가는 연기 이누나.” (이하곤·1677~1724) 조선시대에 술과 차, 시는 하나로 통합된 문화 코드였다. [중앙포토]

이처럼 우리 선인들의 차 문화는 뿌리가 깊고 생활과 밀착해 있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다도(茶道)를 부러움 반 시새움 반으로 보며 한국 고유의 차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은 갈증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을 터다. 이 두 책은 그간의 아쉬움을 달래줄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문헌에서 차와 관련된 시와 산문을 각각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신라시대 이후 한국의 차 문화에 관한 문헌 자료의 총정리 하려는 장기 프로젝트의 첫 결실로 책임자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66·한문학).

그가 태평양학술문화재단(이사장 임희택)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은 2007년. 본래 이 프로젝트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정해렴 현대실학사 대표가 시작했다. 두 사람이 손을 떼게 되면서 재단 측이 차 애호가로, 한학자로 이름이 알려진 송 교수를 찾은 것이다.

이후 송 교수는 한학 실력과 성실성을 갖춘 제자들과 함께 수많은 자료를 뒤져 관련 글을 현대어로 옮겼다.

“차는 술, 시와 함께 조선 후기 사대부 간의 문화코드였습니다. 궁중이나 선비들 사이에 차 사랑이 그렇게 대단한 줄 처음 실감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임원경제지』 등 널리 알려진 사료는 물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나온 『한국문집총간』을 샅샅이 뒤져 우리 차 문화의 전거를 캐낸 그의 소회다.

“공간(公刊)된 자료는 물론 차에 관한 개인문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애걸하다시피 해서 글을 모았죠. 책에 수록된 글은 수집된 자료의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특히 산문은 처음 소개되는 글이 대부분이죠.” 함께 작업한 조창록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거드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임수간에서 정약용, 신위, 초의선사 등 44인의 차시(茶詩)를 1권에, 이익의 ‘다식(茶食)’·이덕리의 ‘기다(記茶)’ 등 29명의 글과 조선왕조실록 등의 공식 기록을 2권에 묶었다.

송 교수와 제자들의 노력 덕에 책에는 우리 차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귀한 글들이 적지 않게 실렸다.

“제자 마음은 자못 후하건만/선생의 예는 너무 냉랭하구려…두 꾸러미 다 베풀면 어때서/술도 아닌 다음에야 한 병만으로 어찌 같이 취할 수 있겠는가”라고 혜장스님에게 차를 더 달라 보채는 다산 정약용의 시에서 인간적 풍모를 알 수 있는 것이 그런 예다.

산문 또한 마찬가지여서 차의 명칭, 재배와 보관, 끓이고 마시는 법은 물론 차의 생산과 재배, 전매제도 등 산업적 측면을 다룬 글과 차의 어원과 용례 등 학문적 글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와중에 철비산 녹하차, 보림사 백모차, 금강령차 등 생소한 차 이름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일도 생긴다.

송 교수는 “한국의 차 문화를 집대성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했는데, 그간의 일부 오역을 바로잡는 등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2013년 ‘한국의 차 문화 천년’시리즈가 6권으로 완간되면 다채롭고 풍성한 우리 차 문화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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