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잠수정 발견] 남북화해에‘잠수정 암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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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릉잠수함 침투사건 (96년 9월) 발생 21개월만에 또다시 동해안 속초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됨으로써 순항하는 듯하던 남북관계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당장 23일로 예정된 정주영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의 귀환과 북.유엔사간 장성급접촉, 영국 이코노미스트그룹 주최의 대한 (對韓) 투자 설명회 등 판문점 3대이벤트가 어떻게 될지 관심이다.

이번 사건으로 특히 새정부들어 추진해온 대북 '햇볕정책' 이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비등할 경우 남북관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잠수함이 가지는 전략.전술적 성격과 발견지역이 우리 영해였다는 점은 북한을 변명의 여지가 없게 하기 때문이다.

◇ 북한의도 뭘까 = 북한잠수함이 우리 영해 깊숙이 침투해 정탐.공작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그러나 새정부들어 지속적으로 대북 화해정책이 취해지는 가운데 잠수함침투가 이뤄졌다.

북한전문가들은 96년 침투사건 직전에도 북한이 우리 기업인을 나진.선봉 현지로 초청, 투자설명회를 갖는등 화해무드가 고조될 때였음을 상기시키며 이번 사건은 북측의 변하지 않는 대남적화 야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한다.

북한은 우리 새정부 출범이후 당국간 회담을 배제하면서 민간차원의 경협과 대북지원 확보에 주력했다.

정경분리에 따른 우리정부의 이원적인 대북전략 틈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김정일 (金正日) 이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후 오는 7월2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의회) 10기 선거를 예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김정일 체제의 출범을 앞두고 대남도발을 통해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군부장악력을 높이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북한 내부사정이 90년 이후 8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식량부족은 체제위기로까지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을것이다.

결국 북한은 육로로는 화해와 교류협력을 외치면서 깊은 바닷속을 통해 '남조선 전복' 을 꾀해온 것이다.

◇ 남북관계 전망 = 새정부의 전진적인 대북정책에 힘입어 이뤄졌던 鄭현대명예회장의 방북 같은 민간교류와 당국차원의 교류는 당분간 '동결'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사실, 새정부는 출범초기부터 '당근' 일변도의 대북접근을 시도했다.

새정부 대북팀은 민간차원의 '공세적 접촉' 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을 고수해왔다.

지난 4월말에는 경협활성화 조치를 취해 기업총수의 방북을 허용하고 투자규모를 완전 폐지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의 반대급부가 약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대북지원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나왔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정부내 대북 유화론자들의 입지약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즉, 무작정 지원해주고 변화를 기다린다는 안일한 대북정책에 경종 (警鐘) 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그같은 자세와는 달리 북한은 지난 4월 베이징 (北京) 당국회담을 거부한데 이어 대남비난의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다.

민족대단결을 내세우며 근로자 파업과 한총련 (韓總聯) 의 반정부투쟁을 선동하기도 했다.

22일에는 우리측이 8.15판문점 공동행사를 위해 제안한 대북전통문의 접수를 거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난번 강릉잠수함침투가 당시 우리 기업인들이 대북투자를 구체화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鄭명예회장의 소5백마리와 옥수수 5만t, 트럭50대 등 1백37억원에 이르는 '선물' 이 보내진 시점에 터졌다.

'줄때마다 칼끝을 들이대는 속성' 때문에 대북지원 여론은 급격히 고개를 숙이고 북한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이란 전망이다.

◇ 어떻게 되나 = 북한은 표류나 사고 등의 주장을 내세워 적반하장격의 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무원을 포함한 잠수정 선체가 명백한 증거로 확보된 만큼 끝까지 발뺌하기는 어려울 것이란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일단 23일 오전 판문점에서 예정된 북한군과 유엔사측간의 장성급 접촉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북한이 눈앞에 드러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미지수다.

돌발적인 상황이니만큼 북한측의 사정이 다급할 수 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북한은 회의 자체를 연기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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