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 보유자가 세계선수권 못 나가는 수영 …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개인 훈련을 하느라 대표팀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수영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정슬기(上)와 최혜라.

한국최고기록을 보유한 선수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수 없는 종목이 있다. 수영이다. 정슬기(20)는 여자 평영(100m·200m)에서, 최혜라(18·서울체고)는 여자 접영(100m·200m)과 개인혼영 200m에서 한국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정슬기는 지난 3월, 최혜라는 4월 한국기록을 경신하는 등 상승세도 타고 있다. 그런데 7월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대표팀 명단에 이들의 이름은 없다. 이들이 태릉선수촌에서 나와 개인 코치와 함께 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릉 입촌 안 하면 태극마크 포기?=정슬기와 최혜라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태릉을 나왔다. 대한수영연맹에 ‘대표에 뽑히지 않아도 좋다’는 자퇴서도 냈다.

태극마크가 싫어서가 아니다. 두 선수를 지도하는 방준영 코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개인 훈련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가 대표 선발을 주관하는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합대회는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대표로 뽑힐 수 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은 선발전 없이 연맹이 대표선수를 정한다.

이들은 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태릉을 나왔을까. 수영계의 한 인사는 “대표팀 코칭스태프보다 개인 코치를 믿다 보니 불화가 생겨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개인 코치들은 대표팀의 제자들을 지도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다. 하지만 연맹은 대표 선발권 등을 쥐고 힘을 키우는 데만 신경 쓴다. 선발전 없이 세계선수권 대표를 뽑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수영 선진국은 클럽 시스템이 탄탄하다. 선수가 클럽에서 개인 코치와 훈련하고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만 대표팀 지도자와 함께 생활하는 형식이다. 대표팀에 있어도 개인 코치는 지도와 조언을 계속한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와 밥 보우먼 코치가 대표적이다.

◆박태환의 개인 훈련도 ‘시끌’=수영연맹이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태환(20·단국대)은 2007년 이후 개인 전담 팀과 주로 훈련하면서도 대표 자격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수영연맹 관계자는 “정슬기·최혜라는 스스로 대표를 포기하는 자퇴서를 썼다.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슬기의 가족은 “태환이는 (특별 대우를 받는) 금메달리스트 아닌가”라면서 “부럽기도 하지만 태환이 역시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에겐 ‘징계’ 대신 ‘잡음’이 따라다녔다. 박태환은 22일 태릉에 입촌하기 전까지 SK텔레콤 전담 팀과 함께 두 차례 개인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출퇴근 형식으로 태릉에서 훈련했다. 전담 팀 관계자는 “수준이 다른 박태환을 무작정 태릉에 잡아 놓는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자꾸 안 좋은 말이 나오자 박태환도 괴로워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동안 일부 수영 관계자는 박태환의 훈련 태도가 불성실하다고 비난했고, 노민상 대표팀 감독은 “전지훈련을 통해 시야를 넓힌 건 좋지만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며 개인 훈련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은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