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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경제과제·대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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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본격화할 실업,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투자와 내수, 더욱 어려워질 금융 여건…. 올 하반기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의 고통이 본격화하면서 각종 경제지표는 악화되고, 특히 실업.자금경색 등이 더욱 무겁게 짓누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올 하반기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하반기의 7대 과제와 극복방안을 들어본다.

◇ 실업, 이제부터 시작이다 = 4월 현재 이미 1백43만명 (실업률 6.7%)에 달한 실업자가 당분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으로 퇴출기업이 확대되는 데다 정리해고, 공기업.지방정부 개혁까지 하반기에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내수 불황이 계속됨에 따라 한때 유행했던 도소매.음식업 등 서비스업 창업도 주춤해질 것으로 보여 여건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기관에 따라서는 연말께 실업자수를 2백만명 이상, 실업률을 9% 이상으로 보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노사분규가 발생하고 이는 또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실업대책도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같은 소득보상 성격의 지원금을 줄이고 대신 직업 알선과 재취업 훈련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 내수.투자는 최악의 상태 = 지난 4월중 설비투자는 전년동기보다 48.6%, 기계류 수입액은 54.1%나 줄었다.

제조업 공장가동률은 68.3%에 머물렀고 도소매 판매는 15%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이 하반기에도 지속되는 것은 물론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업자가 늘고 고용불안이 심화됨에 따라 소비수요가 더욱 위축되고 이는 다시 기업의 판매부진→재고누적→생산.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고금리와 금융경색, 환율급등에 따른 수입가격 상승 등도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연구기관들은 올 설비투자가 30% 이상, 민간소비는 10% 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예상 (설비투자 20~25% 감소) 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재정 적자를 확대하더라도 사회간접자본 (SOC) 투자를 늘리고 자동차세.특소세 등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금융경색 현상은 갈수록 태산 = 금리는 앞으로 조금 낮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중에서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점.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될 때까지는 돈이 제대로 기업으로 흘러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7, 8월께면 기업 자금난이 최악의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은행에 따라서는 무더기 예금인출 사태도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물론 개인 가계도 돈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정부.금융기관이 일단 7, 8월의 금융경색을 푸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이후에는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살려야 할 기업과 퇴출시켜야 할 기업을 잘 가려 돈이 흐를 곳에 흐르도록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돼야 한다.

◇ 수출도 어렵다 = 경제 회복의 유일한 활로라고 할 수출여건도 상반기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증가율은 이미 지난 5월 - 2.6%를 기록했으며, 원자재 부족.수출입 금융 경색은 여전하다.

또 고비는 넘겼다지만 '엔저 복병' 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으며 주력시장인 동남아의 수요는 살아날 기미가 없어 수출기반이 취약한 상태다.

수출가 인하에 따른 통상마찰의 가능성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나마 상반기에는 '금' 수출에다 일부 밀어내기도 있었지만 약효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이에 따라 당초 6~10%로 잡았던 올 수출증가율 전망치를 최근 3~7%로 하향조정했다. 때문에 수출을 늘리기 위해 가용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풀어 수출입 금융을 지원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수출 기업들은 유럽.중남미 등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일본과의 수출경합 품목을 줄이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 관건은 금융.기업 구조조정 = 올 하반기는 구조조정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장래를 좌우할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금융 구조조정은 8월까지로 예정돼 있다.

우선 6월말까지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8%를 못맞춘 12개 은행이 정리대상이 되고 7월부터는 부실 증권사.투신사.리스.상호신용금고.신협 등이 줄줄이 정리대상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부실 금융기관의 무더기 피합병.폐쇄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을 비롯해 제2, 제3의 기업 퇴출도 예정돼 있으며, 금융기관들이 '살기 위해' 대출회수에 나설 경우 연쇄 도산도 우려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는 것.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하되 이에 앞서 각종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외환위기 가능성은 상존 = 가용 외환보유고가 4백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외환사정이 나아지고 있지만 불안 요인은 곳곳에 남아있다.

미.일 정부의 공동 협조로 '엔저' 가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고 중국 위안 (元) 화 평가절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엔저와 위안화 절하로 인한 제2의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해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지속적인 외자유치 노력과 핫머니 유출에 대한 조기경보체제 구축이 필요하며, 구조조정을 철저히 진행해 한국의 대외신용도를 높여야 한다.

◇ 정부.정치권 개혁이 시급 =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 없는 경제개혁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강하다. 여전히 방만한 정부 조직과 낮은 생산성을 개혁하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생산성 향상은 불가능하다고 전문가.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지방정부에 대한 비판이 더욱 강하다.

이재훈.정경민 기자

***도움말 주신 분들

신인석 한국개발연구원 (KDI) 연구위원.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전병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김석동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유병하 한국은행 경제조사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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